'문재인 정부 5년' 미디어 공공성은 쪼이고 자본은 키우고

"글로벌-통신복합체, 미디어 플랫폼 자본의 팽창에 미디어 공공성 영역은 고립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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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왼쪽)과 2020년 미디어 기업집단 매출액 분포.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이 방송산업실태조사 보고서와 각 사업자 전자공시를 참고해 만든 것이다. 김 실장은 "유튜브,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는 정확한 국내 시장 매출액을 확인할 수 없으나 자본 간 경쟁/제휴라는 관점에서 포함시켰다"고 했다.

위 그림 왼쪽은 2000년 당시 미디어 기업집단의 매출액 분포를 나타낸 것이다. 오른쪽 그림은 20년 사이 일어난 변화다. KT·SKT·LGU+ 통신 3사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은 변함없는 가운데 CJ 같은 대기업,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IT 기반 플랫폼 사업자의 지위가 엄청나게 커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거기에 매출 규모를 정확히 알 수조차 없는 글로벌 미디어 자본이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반면 KBS, MBC 같은 기존 미디어 사업자들은 20년 동안 매출액 변화보다 더 큰 폭으로 입지가 좁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김동원 전국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이 14일 언론노조 주관으로 열린 ‘20대 대선 미디어 정책 연속 토론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정책 진단’을 주제로 발제하며 소개한 것이다. 김동원 실장은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문재인 정부 5년의 미디어 정책을 “글로벌-통신복합체”와 “미디어 플랫폼 자본의 팽창”으로 요약했다.

물론 변화는 그 전부터 있었다. 김동원 실장은 “특히 이명박·박근혜 시기의 미디어 시장 변화는 치명적이었다”고 했다. “2008년 출범한 IPTV는 정부 주도 케이블과 위성방송 육성 정책과 달리 초고속인터넷, 이동통신과 결합하면서 놀라운 확장세를 보였”고, 종합편성채널 4개 사업자 선정, 유료방송사업자의 시장점유율 제한 기준 완화 등 미디어 시장을 지금과 같이 만든 중요한 사업과 정책들이 대부분 이 시기에 결정됐다.

문제는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출범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이원화된 방송-통신 조직을 그대로 이어받는 등 ‘경로 의존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합의제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와 독임제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구 미래창조과학부)의 불협화음은 현 정부 들어서도 계속됐다. 김 실장은 “과기부는 이동통신 3사, 양대 포털과 CJ가 주도하는 미디어 시장에 막대한 진흥기금을 쏟아붓고 VR, AR 등 불투명한 시장의 디지털콘텐츠 스타트업을 지원하며 주어진 규제 권한 행사에는 소극적이었다. 반면 방통위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정상화’, 종편 재승인 심사, 태영 등 건설자본의 방송사유화 견제, ‘가짜뉴스’ 규제 등 정치적 쟁점이 되거나 부족한 재원으로 지원할 수 없는 사업계획만을 내놓았다”면서 “위축되는 공공성의 영역에는 규제를, 성장하는 미디어 자본의 영역에는 지원과 방임을 처방한 것이 문재인 정부 5년의 미디어 정책이었다”고 평가했다.

‘미디어재벌’ 대신 ‘재벌에 종속된 미디어’

그 사이 미디어 시장은 급속도로 달라졌다. 김 실장 분석에 따르면 2000년 당시 30대 대규모기업집단 중 미디어 부문에 진출한 곳은 5개사(SK, LG, 삼성, 영풍, CJ, 동양그룹)뿐이었지만, 2020년에 이르러 자산 5조원 이상 71개 기업집단 중 25개(호반 포함)가 진출할 만큼 성장한 시장이 됐다. 반면 “시민이 원하는 콘텐츠보다 필요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미디어 공공성 영역은 글로벌·통신복합체와 미디어 플랫폼 자본과의 경쟁에서 ‘그린벨트’와 같이 고립”됐다. 김 실장은 “호반과 중흥의 사례처럼 지상파 민영방송, 중앙일간지, 경제전문지, PP, 인터넷 매체들은 건설·레저·금융업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집단에 종속되고 있다. 그나마 이러한 인수조차 기대할 수 없는 중소 언론사들은 정부 기금과 지원 확대만을 바라고 있다”고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20대 대선 미디어 정책 연속 토론회’ 첫 순서로 지난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정책 진단’ 토론회를 열었다.

그런데 차기 대선 유력 주자들을 포함해 정치권에선 ‘글로벌 미디어 자본’과의 경쟁을 명분으로 대기업 투자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등 규제 완화에 방점을 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디어 공공성 강화’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다. 김 실장은 “대기업 집단 내 종속된 지위의 신문과 방송 사업이 자산총액 중심의 규제를 완화한다고 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거나 투자와 고용을 늘릴 ‘선한 자본’이 될 가능성은 전무하다”며 “글로벌 미디어 자본과의 경쟁을 목표로 한다면, 자산총액이 아니라 자본 성격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언론노조가 미디어-산업자본 분리(미산분리)를 올해 주요 사업이자 대선 정책 과제로 제시한 이유다.

김 실장은 “지금처럼 기업집단 내 종속된 사업부문이 아니라 계열 분리를 통한 독립된 자본이 구성될 때 투자 집중과 장기 전략이 구상될 수 있다”면서 “예컨대 호반이 지금처럼 서울신문, 전자신문, EBN 같은 인터넷매체를 하고 싶다면 미디어를 계열 분리하거나 매각하거나 하는 것이 기업의 부속품에 불과해진 레거시 미디어의 지위를 바꿀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미산분리’ 현실성·규제 순응도 높일 고민 필요

문제는 방법론이다. 박성우 우송대 글로벌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미산분리에 대해 “훌륭한 아이디어”라면서도 “독립된 미디어 자본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고 미디어산업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이냐”고 물었다.

허찬행 청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겸임교수 역시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정책이라는 게 목표가 합리적이고 타당하다 해도 과연 현실에서 이뤄질 것인가 현실 적용 가능한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계열 분리만 하고 최소한의 투자와 유지 정도만으로 미디어 사업을 영위한다면 지금과 큰 차이 없을 것”이라며 “사업자들이 그 규제에 순응했을 때 적극적으로 투자를 확대하는 등 긍정적 외부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통해 규제 순응도를 높이는 고민을 더 해야 한다”고 밝혔다.

허 교수는 소유규제 완화에 대해서도 “더 자본력 있는 기업이 미디어를 소유한다 해서 적극적으로 투자를 할까? 회의적”이라며 “자본에 대한 소유규제를 완화한다면 그에 따라 일정 정도 의무를 부과하는 것, 예를 들면 지역성과 공공성 있는 콘텐츠 제작을 일정 비율 이상으로 의무화하는 편성 쿼터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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