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오전 6시30분, 나의 세계를 넘어선 '영감 찾기'

[인터뷰] 교양레터 '인스피아' 만드는 김지원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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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지난해 10월 창간기획에 맞춰 내놓은 유튜브 콘텐츠 '신문사에서 '딴짓'하는 사람들'편에 등장한 김지원 뉴콘텐츠팀 기자의 모습 캡처.

교양레터 ‘인스피아’의 기획서를 받아들일 콘텐츠 공장은 많지 않다. ‘영감’을 뜻하는 영단어, ‘유명 학술콘텐츠 플랫폼’의 각 앞·뒤 세 글자를 따온 이름의 레터는 목적이 “영감을 주는 것”이다. 타깃은 “나의 세계를 넘어선 영감을 찾는 지식노마드”이고, 책을 다룬다. 타 매체가 경제, 재테크, 교육·육아정보로 어떻게든 구독자에게 쓸모를 어필하는데 이런 흐릿한 기획이라니. 그런데 이 레터, 의미심장하다. 담당자 김지원<사진> 경향신문 기자는 아예 “어떤 콘텐츠를 만들든 (중략) 비효율적인 자세만큼은” 지키겠다고 선언해 버리는데 구독자는 알음알음 늘고 있다. 출범 5개월, 별다른 홍보 없이 보낸 주간 레터(10일 기준 21편 공개)만으로 현재 1000여명이 본다.


그는 지난달 31일 인터뷰에서 “쓸모 없는 책을 읽고 쓸모 없는 데 집중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보통 사람들이 관심 있을 주제에 대한 답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았다. 글을 잘 쓰지도, 똑똑하지도 않은데 유일한 무기는 시간이다. 대신 책을 읽고 안테나를 세워주면 몇 년 전까지 술만 먹던 저 같은 이들에게도 뭔가 전할 수 있으리라 봤다”고 했다.

경향신문 교양레터 '인스피아'의 2021년 마지막호 '베스트셀러,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편 시작 부분 캡처. 레터는 구독을 신청한 이에게 매주 오전 6시30분 배달된다. 논문 형식을 띠지만 '블로그 글쓰기' 스타일로 쓰여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지난해 8월 서비스를 시작해 10일 기준 총 21편이 나왔다.


매주 수요일 오전 6시30분 배달되는 레터는 논문 형식의 서지정보와 목차로 시작한다. 편당 200자 원고지 약 50매 분량의 롱폼. “나온 시점보다 책의 메시지, 매력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구간(舊刊)을 주로 다룬다.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라는 인사말에 담긴 단어 ‘해찰’(일에는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쓸데없이 다른 짓을 함)이 성격을 규정한다. “쓸모가 있으면 해찰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이슈의 찬반을 떠나 제 판단의 전제가 맞는지 더 딥(deep)한 걸 보고 싶은데 그런 글이 없었다. 원 소스를 보여주면 함께 생각을 할 수 있을 거라 봤다.” 그렇게 사고의 자취를 따라가면 “한 발 더 들어간 뾰족한”, 한 고유한 입장이 남는다. 글은 ‘서평’과 ‘큐레이션’, ‘독자에게 말걸기’의 중간 쯤이다.


인스피아의 강점은 친절함이다. ‘논문’ 외피 아래 ‘블로그식 글쓰기’가 놓인다. 쉬운 단어와 문장에 사진, 인터넷 밈(meme)을 한껏 사용하고, 유명 영화, 드라마를 언급한다. ‘벽돌책’을 모두가 이해하게 다시 쓴다. 특히 웃기는 데 진심이다. ‘짤방’을 효과적으로 쓰고, 거창한 인용구를 “마치 ‘주식으로 1억 만드는 법=2억으로 시작한다’류의 허무개그”로 정리해버린다. <일본을 반성한 역사가에 관한 고찰>편의 영어제목 처럼 고급 유머(?)도 종종 구사한다. “우직하게 스트(레이트)로 미는 기자들 역할은 중요하지만 안 읽는 기사도 의미 있다고 하고 싶진 않다. 옛날 기사를 보면 웃긴 게 정말 많다. 기자로 시작한 당대 소설가가 많듯 기사는 재미를 뺄 수 없는 대중서사인데 독자를 상상하지 않아도 되는 생태계 때문에 읽을 수 없는 글이 너무 오래 살아있다.”


지난해 7월 뉴콘텐츠팀으로 인사가 나며 준비에 들어갔다. 2013년 입사해 정책사회부, 문화부, 사회부, 뉴콘텐츠팀, 모바일팀, 산업부 등을 거친 기자는 뉴스레터 부상을 눈여겨보다 “독자와 직접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에 재발령을 희망했다. 처음엔 자사 뉴스를 종합하는 ‘큐레이션 뉴스레터’를 의도했지만, “재미가 없었고 내가 읽기가 싫었다.” 이는 이달의 기자상, 한국기자상 수상 경험이 있는 10년차 기자가 그간 지녀온 문제의식과도 관련이 있다. “하나의 창작 과정이 되지 않은 큐레이션은 절도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레터가 너무 많은” 상황, 여전히 ‘앉은뱅이 기자’란 단어로 어떤 기자들의 수많은 고민과 역할이 폄훼되는 조직문화 등은 대표적이다.


“이젠 욕심이 난다. 초반엔 무작정 출판사 등에 이메일을 보내 구독을 부탁드리곤 했는데 전문적으로 해주실 마케터가 계셨으면 좋겠다. 좀 긴장은 되는데 저와 비교도 안 되게 훌륭한 많은 기자들이 분야를 떠나 재미있고 딥한 레터를 써서 시장을 같이 키우면 좋겠다.”


인스피아는 쓸모의 시대를 거슬러 기자와 언론이 해야 할 역할, 바라볼 방향을 질문한다. 일주일 동안 책 십여권을 빌려 읽고 되새김질해 레터 하나를 내놓는 제작과정은 효율적이지 않다. 그런데 시시콜콜 개인신상 변화를 전하는 이들이, ‘2030’세대 새 독자가 찾아온다. 자신의 쓸모와 무관해서 모두의 문제를 생각게 하는 의미가 특히 크다. 그는 한 레터에서 “아무리 ‘기레기’라고 해도 저는 여전히 언론사는 기본적으로 쓸모없는 것에 열정을 불사르고 이리저리 발로 뛰어다니려고 하는 미련퉁이들이 꽤 많이 모여있는 공간”이라고 적었다. 언론사는 원래 그런 곳이다. 그래야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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