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공개된 신문·잡지 열독률 조사 결과를 두고 일부 경제지와 지역 신문사들이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올해부터 열독률 조사가 정부광고 집행의 핵심 기준으로 활용되는데, 그 중요성에 비해 이번 조사가 불투명하고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언론사는 “반쪽 조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으며, 조사 방식과 분석 기준을 대거 수정하거나 조사 자체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사를 수행한 한국언론진흥재단에 공문 발송과 직접 방문 형식으로 항의 의사를 전달하는 언론사들도 나오는 상황이다.
영업장 구독 비율 높은 경제지들, 이번 조사서 대체로 열독률 저조
일부 언론사는 새 정부광고 지표를 설계한 문화체육관광부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3일 사장 신년사를 통해 “문체부와 언론재단에 강력한 시정 조치를 요구했다”고 밝힌 한국경제신문은 향후 필요한 모든 방안을 강구할 방침이다. 한국경제 관계자는 “‘모바일한경’에도 지면 광고가 그대로 실리는데 그 구독자나 영업장 독자가 누락되는 등 조사에 문제점이 많다”며 “이번 열독률 조사가 정부광고 집행에 활용돼선 안 된다는 게 회사의 공식 입장이다. 열독률 구간에서 한국경제는 2구간에 속하게 됐는데, 이미 2등 신문 이미지가 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고 법적 대응을 포함해 침해된 이익을 회복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한국경제뿐만 아니라 영업장 구독 비율이 높은 경제지들은 이번 조사에서 전반적으로 열독률이 낮게 나왔다. 특히 각각 4만부와 2만부 대 유료부수를 기록하는 헤럴드경제와 아시아경제는 이번 조사에서 열독률이 0%로 나와 큰 충격을 안겼다. 헤럴드경제 관계자는 “언론재단 담당자분들께 구두로 항의 표시를 전달하긴 했는데, 그쪽에서도 가정을 상대로 조사하다보니 경제지같이 사업장 위주로 구독이 많이 되는 곳은 열독률이 덜 잡힌 경향이 있어 아쉽다는 입장인 것 같더라”며 “분발하지 못 했다는 아쉬운 감정과 함께 어떻게 대응하며 좋을지 고민이 있다. 다만 저희 수치가 작은 건 인정하더라도 0.0001%와 0%의 통계학적 차이가 크진 않을 텐데, 이번 조사에선 구간으로 구분되니 그게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신문사 서열 공고한 지역에선 순위 대거 뒤바뀌며 혼란
신문사들 간 서열이 공고한 지역에서도 이번 열독률 조사로 순위가 대거 뒤바뀌어 혼란이 큰 상황이다. 중부일보, 대구신문 등은 열독률이 0%로 나왔고, 유료부수 1만부가 넘는 곳이 500부도 안 되는 신문사보다 훨씬 낮은 순위를 기록하는 현상도 일어났다. 특히 경기도의 경우 도심지라는 이유로 표본 샘플 비율이 낮게 설정되면서 다른 지역에 비해 열독률 수치가 적게 나오기도 했다.
문완태 중부일보 정치부장은 “인구로 따지면 다른 지역은 1000명 중에 1명꼴로 조사한 건데, 경기 지역은 1650명당 1명에게 물어봤다”며 “저희로선 이해가 안 가고 도저히 못 받아들이겠다. 그 결과 경기 지역 주요 일간지들이 다 4구간에 있는데, 아무리 정부광고 집행에 있어 4구간과 5구간에 차이가 없다곤 하지만 지역 언론의 자존감을 언론재단이 짓밟은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언론재단은 이번 조사에 문제가 없다며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는데, 개선과 보완책이 필요하다”며 “이번 조사를 섣부르게 적용해서도 안 되겠지만 앞으로의 조사에선 지역 특색을 반영하고 지역 언론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이 반드시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문체부는 지난해 정부광고 지표를 설계하면서 애초 열독률 조사의 정확성을 담보하지 않았다. 완전한 조사 방식이 아님을 전제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언론중재 결과 등 사회적 책임 지표와 법령 준수 같은 기본 지표를 엮어 새 기준을 만들었다. 이선영 문체부 미디어정책과장은 “경제지의 경우 조사의 한계라기보다 실제 열독 현황을 반영한 거라고 보는데, 지역 신문의 경우는 우리나라 지역지가 좀 많기 때문에 이 신문사들이 모두 잡히는 건 어떤 조사에서도 불가능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그래서 5구간이라 하더라도 기본 점수를 상당히 높게 드려서 종합적으로 봤을 땐 기존 부수 평가에 비해 결코 불리하지 않게 설계를 했다. 다만 향후엔 조금이라도 표본 수를 늘려서 전국적으로 고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적정한 수준을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년 8억원에 가까운 정부 예산을 쓰면서 신문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열독률 조사를 고수하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조사 방식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더 변별력 있는 매체 영향력 평가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는 이유다. 이승배 광남일보 부사장은 “밑도 끝도 없이 표본조사를 하기보다 신문 인쇄소의 세금계산서 등을 활용해 발행부수를 파악하고 최소한 몇 %라도 깔고 가야 열독률이나 구독률이 누락되는 신문이 안 나올 것”이라며 “신문을 발행하고 지대가 들어오는데 구독률이 제로로 나오는 게 맞나. 세부적인 방안이 보강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성재 이데일리 편집국장은 “이런 조사 방식이라면 당연히 전국적으로 신문을 찍는 ‘조중동’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기존의 방식과 별반 차이가 없이 가는 것 아닌가. 그럼 굳이 왜 이런 식의 조사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CES만 봐도 트렌드가 급변하고 있는데 단순히 페이퍼를 중심으로 구독률과 열독률 조사를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정부 예산을 받기 위해 다시 종이로 회귀해야 한다는 건데 트렌드에 역행하는 게 아닐까 우려된다”고 했다.
강아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