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노동'은 화해할 수 있을까

[언론 다시보기] 계희수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

계희수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

지난해 충북민언련에 와서 진행한 첫 사업은 <언론은 노동자를 어떻게 지우고 있는가> 기획강연이었다. 언론·노동계 관련자들과 언론의 노동 보도 행태를 짚어보고 대안을 모았다. 언론의 노동 문제 왜곡·축소는 오래 지적돼왔다. 한국사회 전반에 반노동 정서가 짙게 깔리고 노동 문제가 주변화된 데 언론이 크게 일조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충북은 제조업 중심 경제 구조 특성상 각종 공장이 밀집해 다양한 형태의 사고나 문제가 빈번히 발생한다. 때문에 제대로 된 노동 보도는 더욱 중요한데 대다수 언론이 자본의 입장에서 보도하는 게 현실이다.


강연 기획 당시 지역에는 SPC삼립 청주공장 물류 운송 파업 이슈가 있었다. 이 파업은 코로나 시국에 노조가 집단행동을 해야 했던 이유는 빠진 채 ‘불법파업’, ‘민폐노총’이 들어간 제목 아래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지역언론이 노조의 부정적 부분만 부각하거나 왜곡하는 사이 노동계에서는 ‘차라리 언론이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암울한 목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특별히 첫 사업 주제를 노동 보도로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역을 취재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허무하게 일터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살려고 나갔다가 죽어 돌아온 사람들의 이름과 찢기고 뒤틀린 마지막 모습은 저마다 달랐으나, 그들의 죽음은 대부분 ‘근로자 1명’으로 단신 처리될 뿐이었다. 나는 노동 문제를 부지런히 취재했다. 기사로 인해 갑질 가해자가 해고된 적도 있었고,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이 긴 싸움 끝에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도운 적도 있다. 기자로서 기쁨과 보람이었다.


그런 내 리포트를 소개하고, CG를 만들고, 자막을 치는 선배들이 정규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 못 가서였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은 정말이었다. 그 선배들은 정규직과 섞여 지시를 받고 같은 업무를 하는 무늬만 프리랜서 혹은 계약직이었다. 이를 인지한 후로 노동 기사를 쓸 때마다 몹시나 겸연쩍었다. 리포트 끝에 이름을 얹을 때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퇴사 후 나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故 이재학 PD님이 세상을 등졌다. 지역에서만큼은 적극적으로 보도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기획 강연에서는 언론사 내부인력의 구조 문제가 언론인의 노동인권 감수성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언론이 자기 문제를 은폐해 해결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수많은 이재학들이 현장을 떠받치고 있는 한, 일한 만큼의 보상과 안전한 노동을 만들기 위한 정교하고 집요한 보도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또한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한 문제의식도 공유됐다. 사람이 죽어야 아이템이 되는 현실, 경제 메커니즘 속에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않고 산재나 파업을 경찰에 의존한 사건·사고 발생기사로 다루는 등이다. 노동·노동자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조장하는 용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파업 등의 취지를 충실히 보도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다. 노동인권저널리즘의 교육, 사건팀에서 노동팀 분리, 산재보도 가이드라인 제작 등 여러 대안이 제시됐다. 당장 기자들은 언론노조의 노동존중보도 선언문을 참고하면 좋겠다. 특히 지역언론은 현장에 밀착해 문제를 보고 해결될 때까지 놓지 않는 자세를 보여줬으면 한다. 언론인도 노동자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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