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끝자락에 멀리 프랑스에서 신선한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프랑스 언론인 250명이 ‘언론사 소유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언론이 몇몇 거대 주주에 의해 독점되는 구조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언론사 소유(지배) 구조 개선은 언론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입니다.
KBS는 2022년 새해 첫 9시 뉴스에서 의미 있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전문가와 유권자는 어떤 정책 의제를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조사했는데, 국민들은 놀랍게도 언론개혁과 사법개혁을 집값 안정과 일자리 창출에 이어 중요한 의제 3위로 꼽았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한국기자협회 1만1천여 회원 여러분! 202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용맹하고 지혜롭다는 ‘검은 호랑이’의 해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언론은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아직도 암흑 같은 터널 안에 있습니다. 우리 기자들이 밤낮없이 뛰고 또 뛰어도 언론 신뢰는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고, 유능한 기자들의 ‘탈언론’ 행렬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자 개개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포털이 지배하는 일그러진 언론 생태계가 우리를 사지로 내몰고 있습니다. 거대 신문사는 부수를 조작하고, 언론사들이 기사형 광고로 돈벌이를 하는 사이 국민들은 언론을 믿지 않습니다. 이러는 사이 중앙이 방치한 지방 언론은 산소호흡기로 간신히 연명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그것은 언론개혁입니다. 프랑스 언론인들의 선언문처럼, 우리 국민들의 열망처럼 근본적 혁신이 필요합니다. 기자는 공인일까요? 사인일까요? 김영란법을 적용할 때는 공인이고, 징벌적 손배제를 상법으로 규제하려고 할 때는 사인입니다. 기자가 온전한 공인으로 인정받으려면 언론 신뢰 회복이 급선무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언론사 소유 구조를 바꾸고, 일그러진 언론 생태계를 정상화해야 합니다. 언론단체가 팔을 걷어붙이고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합니다.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이것이 언론개혁의 출발점입니다.
당장 올해부터 정부 광고의 집행 기준이 바뀌고, 포털의 뉴스 콘텐츠 유통 방식에도 변화가 예상됩니다. 변화는 기회입니다. 언론단체들이 자성의 목소리를 내면서 추진 중인 ‘통합형 자율규제기구’가 연착륙하기 위해선 언론 생산자부터 언론 유통자를 거쳐 언론 소비자까지 모두가 협력해야 합니다. 대의를 위해 작은 기득권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올해는 선거의 해입니다. 당장 대통령선거가 63일 앞으로 다가왔고, 대선이 끝나면 84일 뒤 지방선거가 실시됩니다.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린 선거는 언론 신뢰 회복의 기회입니다. 불편부당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는 언론의 생명입니다. ‘의도’가 담긴 정파적 보도는 언론 신뢰 하락을 부채질할 것이며 끝내 회복 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힘들지만 꿋꿋해야 합니다. 오동나무는 천년이 흘러도 곡조를 간직하고(동천년로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매화나무는 일생을 한파에 시달려도 그 향을 팔지 않습니다(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조선 중기의 문인 신흠의 한시는 작금의 언론을 두고 읊조린 듯합니다. 우리의 기사는 천년이 흘러도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어떤 어려움에도 기사를 팔아먹지 않겠다는, ‘매필(賣筆)’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이런 고민과 분투와 각오라면, 끝내 위기에 빠진 언론을 소생시킬 것입니다. 새해 새아침, 회원 여러분과 함께 모진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담대한 행보를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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