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윤리위반, 기자 엑소더스… 언론계 침체 느낀 한 해

[2021 미디어 10대 뉴스]

① ‘징벌적 손배’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

언론중재법 논란이 모든 언론개혁 이슈를 집어삼킨 한 해였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논란은 지난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법무부가 언론사까지 포괄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몇 차례 떠들썩했으나, 국회 상임위 논의까지 진전되지 못하고 잡음만 무성하던 터였다. 그런데 올봄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바뀌고 당내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가 꾸려지면서 본격적인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검찰개혁’에 이어 ‘언론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워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에 총력을 기울였다. 징벌적 배상액을 손해액의 3배에서 최대 5배로 올린 개정안이 7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이어 8월 안건조정위, 전체회의까지 속전속결로 통과됐고, 본회의 전 최종 문턱인 법사위까지 넘어섰다. 국제 사회에선 잇따라 비판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급기야 청와대마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다. 결국, 본회의 처리는 보류. 여야는 8인 협의체에 이어 언론·미디어 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연말까지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언론중재법 처리는 보류됐지만, 이 과정에서 언론에 대한 국민의 높은 불신을 확인한 언론계는 자체적으로 통합 자율규제기구를 띄우는 등 언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자정 노력에 힘쓰고 있다.

② 대장동, 금품수수, 경찰 사칭… 언론인 윤리위반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인터넷신문협회는 지난 1월 언론인이 실천해야 할 9가지 원칙을 담은 ‘언론윤리헌장’을 선포했다. ‘시민의 신뢰는 언론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는 공감대에서 윤리적 책임을 강조한 언론계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이런 취지가 무색하게도, 언론윤리 재확립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올해 잇따라 발생했다. 조선일보, TV조선, 중앙일보 전현직 기자들이 ‘가짜 수산업자’ 김모씨가 건넨 고급 수산물, 수백만원 상당의 골프채, 차량 등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취재과정에서 윤리의식 부재를 드러낸 사건도 있었다. MBC 기자와 PD가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논문 표절 의혹을 취재하면서 일반인을 상대로 경찰을 사칭해 논란이 됐다. 기자사회에 가장 큰 충격을 안긴 인물은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부국장이었다. 그는 기자로 일하면서 ‘화천대유’라는 자산관리 회사를 세워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해 수천억원대 수익을 올렸다. 화천대유 대주주이자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의 핵심 인사인 김 전 부국장은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뒤에야 머니투데이에 사표를 냈고, 현재 구속기소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③ 연합뉴스 ‘기사형 광고’ 사태

연합뉴스 콘텐츠가 포털 메인 화면에서 사라졌다. 연합뉴스가 기사형 광고를 일반 기사인 것처럼 포털에 전송한 사실이 드러나자 양대 포털이 콘텐츠제휴 계약을 해지했기 때문이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뉴스 제휴·제재를 심의하는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지난 3월~7월7일 기준으로 연합뉴스의 기사형 광고 649건을 적발하고 규정에 따라 건당 0.2점, 총 129.8점을 부과했다. 기존 벌점 0.4점을 더해 총 벌점 130.2점을 받은 연합뉴스는 32일간 포털 노출 중단 징계를 받은 뒤 지난 11월 사실상 퇴출 심사인 재평가에서도 탈락했다. 연합뉴스는 노출 중단과 재평가 탈락은 이중제재라며 제평위 결정에 반발했다. 제평위 권고로 계약을 해지한 두 포털사를 상대로 법원에 계약 해지 가처분도 신청한 상태다. 연합뉴스는 포털 메인 화면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로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의 공적 역할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언론계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향후 법원의 판단을 떠나 연합뉴스의 공적 역할 재확립과 이미지 쇄신 노력이 불가피하다. 대형 언론사여도 포털 정책에 휘청거리는 현실, 너도나도 기사형 광고를 생산하고 포털에 내보내도 증거가 없으면 제재하기 어려운 제평위 기능의 한계도 이번 사태의 과제로 남았다.

④ 호반, 전자신문·EBN 이어 서울신문 대주주로

호반그룹은 올해 서울신문, 전자신문, EBN 등 언론사 3곳의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건설사의 공격적인 언론사 인수 행보에 언론계 안팎의 관심이 쏠렸다. 지난 5월 호반건설은 자산 총액 10조원을 넘는 대기업 집단에 지정되자 방송법에 따라 kbc광주방송의 지분을 파는 대신, 전자신문과 EBN을 잇달아 인수했다. 또 지난 2019년 6월 포스코의 서울신문 지분 19.4%를 매입한 호반은 2년여 만인 지난 10월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 지분 29%까지 사들이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난 7월 호반은 우리사주조합이 보유한 주식 매입을 위해 특별위로금(1인당 평균 7500만원) 등 600억원을 제안했고, 서울신문 구성원 57.84%의 찬성으로 인수가 성사됐다. 이로써 호반그룹 창업주인 김상열 호반장학재단 이사장은 지난 13일 서울신문과 전자신문 회장으로 선임됐다.


호반의 잇따른 언론사 인수 배경을 놓고 건설자본이 언론사를 사업 확장의 도구로 쓰고, 편집권을 침해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 나온다. 호반은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과의 인수 협상 당시 구성원들의 ‘편집인 임명 동의 투표’, ‘편집권 독립’ 조항을 거부한 바 있다.

⑤ ABC 부수조작 의혹과 정부광고 새 지표 확정

정부광고를 집행하기 위한 새 지표가 지난 1일 확정됐다. 지난해 11월 한국ABC협회 내부에서 나온 부수 조작 폭로가 지난해 3월 문화체육관광부의 사무 검사 결과로 확인된 지 약 1년 만이다. 문체부는 ABC협회에 제도개선을 권고했으나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지난 7월 정책적 활용 중단을 선언했고, 이후 새로운 지표를 만들기 위해 언론단체와 기관, 정부광고주 등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한 후 새 지표를 발표했다.


새 지표는 ABC협회의 부수 공사 대신 전국 5만명을 대상으로 한 열독률 조사로 광고 효과를 측정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문체부는 여기에 더해 언론중재위원회 직권조정·시정권고 건수, 편집위원회·독자위원회 운영 여부 등 언론의 사회적 책임 이행 여부도 핵심지표에 포함시켰다.


다만 그 방향과 실효성을 두고는 여러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광고를 둘러싼 관행 전반의 문제를 개선하자는 요구가 컸는데 새 지표는 이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의견이었다. 지표 자체의 적절성을 떠나 실제 광고주인 공공기관이 수용하고 이용할 여지가 크지 않다는 점, 열독률 조사 역시 기존 질서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새 지표가 최소한의 실효성을 가지려면 투명성 확보를 위한 후속 작업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⑥ ‘취재원 강요미수’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1심 무죄

1심의 판단은 무죄였다. 취재원에게 여권 인사들의 비리 정보를 알려달라고 강요하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동재 전 채널A 기자는 지난 7월16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해 8월 기소 이후 약 1년 만이었다.


재판부는 이 전 기자가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 대표에게 다섯 차례 편지를 보내고, 이 전 대표의 대리인 지모씨를 세 차례 만난 데 대해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특종 욕심으로 수감 중인 피해자를 압박”한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언론의 자유는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기에 언론인이 취재 과정에서 저지른 행위를 형벌로서 단죄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무죄 취지를 밝혔다.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전문가들은 대부분 무죄를 예상했다. 미수는 입증도 힘들뿐더러 대법원 판단 경향을 보면 강요죄를 매우 좁은 범위에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재판은 취재윤리 위반에 사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진행됐기에 ‘검언유착’ 의혹은 쟁점도 판단 대상도 아니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재판 결과를 계기로 애초 MBC 보도의 근거가 충분치 않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⑦ 격화된 ‘젠더 이슈’와 언론계 자성 시도

젠더 이슈는 양극화된 우리 사회의 단면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낸 사례였다.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 온라인 공격’, ‘알페스 처벌 주장’, ‘GS25 집게손 논란’, ‘맥도날드 불매운동’ 등 수많은 온라인 백래시가 나타났고 그때마다 화제가 됐다. 이를 다루는 언론사 전반의 태도는 다분히 문제적이었다. 남초 커뮤니티 혐오 발언을 그대로 확대재생산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지금 여기에서 가장 극심한 갈등을 더 격화할 보도가 조회수를 목적으로, 큰 숙고 없이 이뤄졌던 만큼 지탄받아 마땅한 경우였다. 다만 모든 언론이 흐름에 편승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일보 ‘허스토리’, 경향신문 ‘플랫’, 한겨레 ‘슬랩’처럼 세상을 젠더 관점에서 보고 이로써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다. 국내 매체 중 처음으로 젠더데스크를 도입한 한겨레는 보도 내 성별균형을 맞추기 위해 여성 전문가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하고 있다. 지역 언론인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에서도 올해 젠더데스크나 담당 기자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교제 살인’이나 ‘여경 무용론’ 등 백래시가 끊이지 않고, 제1야당 대표의 여성혐오 조장 발언이 뉴스가 되는 시대, 언론이 할 역할은 더 커졌다고 하겠다.

⑧ 기자들 ‘언론계 엑소더스’ 가시화

올 한해 많은 젊은 기자들이 언론사를 떠났다. 그동안 차장급 이상 기자가 정계나 재계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는 많았지만, 올해는 10년 차 미만 젊은 기자들이 대거 스타트업이나 대기업으로 전직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언론계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젊은 기자들의 ‘언론계 엑소더스(대탈출)’ 현상은 상대적으로 처우가 좋은 메이저 언론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민일보, 동아일보, 이데일리, 조선일보, 한국경제신문 등 인력 유출이 특히 심한 언론사 노조에서는 사측에 대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같은 현상은 사양세인 언론 산업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언론사를 퇴사한 이들은 “언론사 기자였을 때 답답했고, 그 안에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생각에 퇴사를 결심했다”고 언급(기자협회보 4월21일자)했고, 기자로 남아있는 이들도 “근무 여건이 나쁘고 자기계발할 시간도 부족한 직업인데 임금 수준마저 상대적으로 낮아진다면 굳이 이 직업에서 버틸 이유가 뭔가 자문하게 된다”고 토로(기자협회보 11월3일자)했다. 언론의 위상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지만, 이를 타개할 방안은 보이지 않은 지점에서 젊은 기자들의 이탈에 대한 언론사 내부 고민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⑨ 본격화한 ‘독자 수익모델’ 변모 시도

올해 국내 언론에선 디지털 구독이나 후원 등 독자 수익모델로의 변모를 꾀하는 시도가 잇따랐다. 중앙일보는 지난 8월 홈페이지·모바일 개편을 통해 독자의 온라인 회원가입을 적극 유도하고 소비·행동 패턴 등을 데이터 분석하려는 시도를 감행했다. 두 달여 만에 온라인 회원 20만명을 확보하며 내부에선 올해 목표치를 조기달성할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5월 ‘로그인 월’을 도입,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10개 넘게 보려면 로그인을 하도록 조치했다. 충성독자를 확보하려는 방안은 애플리케이션 개편, 카카오톡 이모티콘 제공 등 다방면으로 실행되며 기대를 모은다. 한겨레는 지난 5월 ‘한겨레 서포터즈 벗’이란 이름으로 후원회원제를 시작하기도 했다. 디지털뉴스에 비용 지불을 요구하지만 구독과 같은 거래가 아니라 매체의 가치에 대한 지지를 부탁하는 방식은 국내 종합일간지 규모 매체에선 처음으로 시도됐다. 한국판 ‘서브스택’ 미디어스피어,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론칭처럼 언론사 밖에서도 한계치에 다다른 기존 광고 기반 수익모델의 대안을 독자에게서 찾으려는 움직임이 나왔다. 올해 행보들은 언론산업의 위기를 타개하는 돌파구이자 계기로서, 하나의 분기점으로 향후 평가될 수 있을까.

⑩ 개국 10주년 맞은 종합편성채널

종합편성채널이 이달 1일 개국 10주년을 맞았다. 이명박 정권 당시 ‘정치적 기획’의 산물로 탄생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며 기대를 모았던 종편 4사. 하지만 개국 직후 시청률 0%대의 초라한 성적표를 쓰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걸 몸소 증명했다. 그런 종편을 살린 건 정치였다. ‘정치 과잉’이라 할 만큼 정치와 시사를 주제로 한 토크쇼를 대거 편성하는 종편의 전략은 통했고, 시청률은 따라 웃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종편은 방송산업 전반의 강자로 성장했다. 특히 JTBC의 변천사, 그리고 TV조선의 괄목할만한 성장은 주목할만하다. 개국 직후부터 드라마와 예능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며 다른 종편과 차별화된 길을 걸어온 JTBC는 2013년 손석희 앵커를 보도 담당 사장으로 영입하며 본격적으로 ‘탈종편’의 길을 걸었다. 2016년 말~2017년 초 정점을 찍었던 JTBC의 시청률과 신뢰도, 영향력은 이후 뚜렷한 하락세지만, JTBC가 방송뉴스와 저널리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TV조선은 2019년 ‘내일은 미스트롯’에 이은 트로트 열풍에 힘입어 뉴스·시사프로그램 시청률까지 상승하며 2년째 ‘종편 1위’ 자리를 고수 중이다. 지난해 무려 589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종편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TV조선은 올해 다시 역대 최고의 실적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고은, 최승영, 강아영, 김달아, 박지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