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 스크랩북 500권을, 도서관을 주머니 속에.’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로 가능하지만 1994년엔 쉽게 믿기지 않은 일이었다. 그해 11월 기자협회보는 “미래의 첨단 정보 매체인 CD-ROM을 활용한 언론사 뉴미디어 산업”을 소개했다.
그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스포츠서울이 대용량 정보를 담은 ‘CD-ROM’을 발행해 화제를 모았다. 조선일보는 고정 칼럼인 ‘이규태 칼럼’ 10년치를 묶어 CD-ROM으로 펴냈다. 동아일보는 1920년~1993년 사설 3537개를 모은 ‘동아일보 사설선집’을 CD-ROM으로 선보였다. 스포츠서울도 1982년부터 1992년까지의 한국 프로야구 기록을 CD-ROM에 담아냈다. 각 CD-ROM에 실린 문서 자료는 원고지 수십만장에 달했다. 기자협회보는 “다가올 뉴미디어 정보시대를 대비해 언론사들이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대용량의 정보를 가공, 상품화에 나선 것”이라며 “이런 추세는 케이블TV, 지역민영방송, 위성방송의 출범 등으로 미디어 환경이 다매체 시대로 변화함에 따라 신문산업의 새로운 활로 찾기라는 차원에서 더욱 활발한 모습을 띠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이 내놓은 CD-ROM에 시장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조선일보의 이규태 칼럼 CD-ROM은 지식인들과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CD-TITLE’ 분야 판매 베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신문사들은 CD-ROM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동아일보는 뉴미디어사업부를 신설하기도 했다. 당시 김병화 동아일보 자료전산부 기자는 기자협회보에 “CD-ROM 제작비만도 1억여원이 들만큼 많은 정성을 들였다”며 “뉴미디어사업에 대한 회사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새로운 발걸음을 떼려면 사람과 시간, 돈이 든다. 1994년 기자협회보는 “CD-ROM 사업은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지만 신문산업이 정보산업으로의 변신을 예고하는 가시적인 조짐이라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면서 “엄청난 정보를 손으로 입력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정보입력 기술의 개발도 관건”이라고 제언했다. 1990년대 기사에도 ‘신문 활로 찾기’, ‘다매체 시대’, ‘뉴미디어’처럼 익숙한 단어가 있는 걸 보면 신문업계와 기자들의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현 시대 신문사들의 뉴미디어 사업이 어떻게 기록되고 또 30년 뒤엔 어떻게 평가받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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