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오브 도그의 모호함에 대하여

[이슈 인사이드 | 문화] 김재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김재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3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수상 후보를 예측하는 움직임도 바빠졌다. 버라이어티 등 미국 연예매체가 아카데미 작품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는 작품은 제인 캠피온 감독의 ‘파워 오브 도그’다. 1967년 발매된 토머스 새비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하며 ‘오스카 레이스’의 청신호를 밝혔다.


영화는 1925년 미국 몬태나주의 한 농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농장을 운영하는 필(베네딕트 컴버배치)은 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가 과부인 로즈(커스틴 던스트)와 재혼한 것이 탐탁지 않다. 로즈가 돈을 노린 ‘꽃뱀’이라 확신하는 필은 자신과 동생이 살던 대저택에 들어와 함께 살게 된 로즈와 그녀의 아들 피터(코디 스밋 맥피)를 노골적으로 괴롭힌다. 피터는 필의 괴롭힘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가는 엄마를 위해 필을 제거할 방법을 찾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모호함’이다. 주인공들의 행동은 시시각각 변하는데, 캠피온 감독은 그 이유를 명쾌히 설명하지 않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건 신경을 곤두서게 하던 날카로운 피아노 선율도, 분노로 가득 찬 컴버배치의 얼굴도 아닌, ‘왜?’라는 질문이다.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영화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캐릭터들의 미스터리를 다루지만 이들의 모든 비밀들을 누설하지 않는다’고 평했다.


가장 비밀스러운 이는 필이다. 피터가 종이로 정성껏 만든 꽃에 불을 붙이고, 동성애자인 그를 ‘낸시’라 부르며 조롱하던 필은 어느 날 갑자기 태도를 바꾼다. 필은 ‘호모’라는 카우보이들의 비아냥을 무시하고 걸어가던 피터를 큰 목소리로 부른다. 그에게 다가온 필에게 피터는 자신을 ‘미스터 버뱅크’가 아닌 ‘피터’라는 이름으로 부르라고 하고, 가죽으로 만든 밧줄을 만들어 선물해주겠다는 호의까지 베푼다.


필의 행동이 변한 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는 복수심이다. 로즈가 맘에 들지 않는 필은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히는데, 필에게는 피터 역시 로즈를 괴롭힐 수 있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피터를 회유해 자기편으로 만들면 로즈가 괴로워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복수심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필은 피터에게 승마를 가르쳐주고, 아버지가 자살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피터에게 “불행을 견디면서 어른이 된다”는 진심어린 조언도 한다.


필이 왜 남을 괴롭히는 비뚤어진 인간이 됐는지에 대한 명확한 계기도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몇몇 대사와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피터의 성정체성이 실마리가 되기는 한다. 필은 맨손으로 소를 거세시키는 ‘상남자’지만, 동시에 브롱코 헨리라는 남자를 사랑했던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1920년대에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것은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남자 중의 남자’가 된 그는 타인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자아를 표출하는 괴물이 됐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브롱코 헨리를 떠오르게 하는 피터를 보며 동정심 또는 사랑의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다.


복수심이었든, 사랑이었든 그 사이 어딘가의 감정이었든 정답은 없다. 중요한 건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이 영화의 모호성 그 자체에 있다. 캠피온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미스터리한 존재이기에 한 인간을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호함의 미덕을 보여준 파워 오브 도그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지 기대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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