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의 탈진(burnout) 현상이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적인 질병 분류체계에 포함된 것은 2019년이다.
탈진 연구자들은 탈진의 주요 원인을 여섯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지속불가능한 업무량. 둘째,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는 인지. 셋째, 노력에 대한 불충분한 보상. 넷째, (자신을) 지지하는 공동체의 결여. 다섯째, 공정성의 결여. 여섯째, 가치(value)와 기술(skill)의 부적당한 결합.
이제 이 여섯 가지 요인들을 기자들의 삶에 대입해 보자. 첫째, 업무량.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일하고 있나? 둘째, 통제력. 책상에 붙들려 있는 직종보다는 자율성이 많다고 할 수 있지만 마감시간과 속보 경쟁, 인터넷 트래픽의 노예라는 점, 퇴근 이후라도 비상 상황이 생기면 언제든 노트북을 켜고 다시 업무로 복귀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기자라는 직종의 자기 통제력은 큰 걸까, 작은 걸까? 셋째, 일한 만큼 보상받고 있나? 넷째, “힘들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 만큼 뉴스룸의 조직문화는 기자들을 지지하는 분위기인가? 다섯째, 성과는 오로지 좋은 보도를 했는지 여부로만 공정하게 측정되나? 협찬이나 광고를 따오는 것이 인사 결과로 연결되는 것을 보며 내가 왜 기자가 되었는지 자문해 본 적은 없나? 여섯째, 시민의 알 권리라는 가치를 앞세워 개인의 사적 공간이나 권리를 침해해 본 경험이 없는 기자가 있을까? 그러다가 취재 대상으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으면서 자신의 일에 대해 회의해 본 적은 없나? 그러나 그런 고민을 선배나 데스크에게 털어놓았을 때, “기자가 그런 거지”라는 답 대신에 어떻게 윤리적으로 대처해야 하는지 실제적인 조언을 들은 적이 있나?
질문에 대해 답하다 보면 자명해진다. 언론사는 그 자체로 탈진 유발 조직이다. 기자로 일한다는 것은 탈진을 각오해야 한다는 의미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반 미디어(anti media)가 정치적으로 동질적인 집단을 묶어내는 구호로 작동하는 세상에서 기자들은 만만한 공격 표적이 되고 있다. 코로나19같은 전례 없는 사건들이 발생하면 기자들은 어떤 지침도, 답도 없이 현장에 투입된다. 재난의 희생자가 되어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기자들 스스로도 트라우마를 경험하지만, 뉴스룸은 “아프다”고 얘기하는 것이 쉽게 수용되는 돌봄 문화가 발달한 곳이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기자들이 뉴스룸을 탈출하는 엑소더스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적인 선택으로 보이는 일들은 언론사가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다.
대책은 없는 것일까? 최근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여성기자협회가 회원들이 어떤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지 실태 파악을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은 주목할 일이다. 설문조사의 취지는 ‘건강한 보도는 건강한 저널리스트에서 나온다’(기자협회보 10월27일자 보도)는 것이다. 언론사는 원래 노동 강도가 센 곳이니까, 취재는 원래 험한 일이니까, 기자들의 마음 돌보는 데까지 회사가 쓸 돈이 없으니까라는 핑계들로 사측과 경영진, 뉴스룸의 간부들은 이러한 변화를 외면하려 해서는 안 된다. 기자들이 각자도생으로 탈진의 현장을 빠져나가는 것이 답이 아니라 일터의 문화를 바꾸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결국 뉴스를 만드는 것은 기자다. 기자를 먼저 구하지 않으면 언론을 구할 방법은 없다.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장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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