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혁신의 상징인 실리콘밸리에선 오늘날 메타버스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다음 세상은 메타버스가 차지할 것이라는 테크 업계의 확신 때문이다.
메타버스는 여러 방면에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헤드셋부터 비디오 게임, 디지털 스포츠 카드를 사고파는 대체 불가능 토큰(NFT), 세컨드 라이프와 같은 가상현실, 인공지능 반도체 칩과 3D 엔진 솔루션까지 셀 수 없는 영역들이 메타버스라는 깃발 아래 모여들고 있다.
마치 사물인터넷(IoT)이나 인터넷이 어떤 특정 산업을 콕 집어 가리킬 수 없듯이, 오늘날 메타버스는 전 산업을 아우르는 트렌드처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가장 핫하게 기대를 받고 있는 제품 중 하나도 메타버스 제품이다. 이른바 애플이 내놓을 ‘XR 헤드셋’이다. XR은 AR과 VR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확장현실(extended reality)을 가리킨다. 애플은 공식 발표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업계에서는 애플이 등록한 특허를 분석해 4K 마이크로 OLED 디스플레이를 내장하고, 카메라 12대를 탑재하며 애플 자체 칩인 ‘M1’을 적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눈동자만으로 헤드셋을 제어하고 아이폰 없이 XR 헤드셋 단독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상상을 해보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애플의 XR 헤드셋을 착용하고 길을 걸으면 내비게이션이 켜져서 자동으로 위치를 알려주고 업무를 보거나 공부를 할 때는 눈 앞에 필요한 매뉴얼이나 영상 자료들을 불러들여 사용할 수 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앞서 “전 세계 사람들이 밥을 먹듯이 AR을 경험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확언한 바 있다.
애플에 소송을 걸어 세계의 주목을 받은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는 이미 메타버스 대표 주자로 입지를 다졌다. 아바타를 만들고 가상의 섬에 낙하선을 보내고 상대방과 총 싸움을 하는 것, 이 모두를 가상의 공간에서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다. 특히 인기 래퍼인 트래비스 스캇은 포트나이트에서 5차례나 가상 공연을 열어 2700만명을 운집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또 가죽재킷으로 유명한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반도체부터 솔루션까지 모든 것을 메타버스화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페이스북은 사명을 아예 메타로 변경했다. 특히 메타의 헤드셋인 오큘러스는 코네티컷대 정형외과 수련의들의 교육용 도구로 사용할 정도로 실생활에 스며들고 있다. 수련의가 오큘러스를 착용하고 다양한 수술을 혼자서도 실습해 볼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미디어에서도 볼 수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오큘러스 스토어를 통해 남극과 오지 등을 탐험하고 가상으로 만져 볼 수 있는 9.99달러 짜리 ‘익스플로어 VR’이라는 콘텐츠를 내놓았다. 또 태국 내 인신매매 여성들의 스토리를 담은 ‘고스트 VR’, 소말리아의 기후 재앙을 다룬 ‘이것이 기후변화다’, 컴퓨터 바이러스 세계를 심층 분석한 ‘제로 데이즈 VR’ 등 주목받는 콘텐츠들이 몇 년 새 등장했다.
미디어 영역에서도 잇따른 실험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글이나 영상으로 사실을 전달하는 것보다 가상현실이 독자들에게 더 큰 호소력 있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어서다. 뉴스위크·타임지 기자 출신으로 엠블레매틱그룹이라는 몰입형 저널리즘 스타트업을 설립한 노니 델라 페냐는 뉴스의 미래가 가상현실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동일하게 적용을 하면서도 만약 독자들에게 더 큰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저널리즘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레거시 미디어들의 몰입형 저널리즘은 수년 전에 붐을 탄 적이 있고, 오늘날 메타버스 열풍도 한때 유행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오늘날 물결은 과거에 비해 몇 배나 더 거세졌다는 점이다. 몰입형 저널리즘이 하나의 확고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까진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미래가 다가오는 속도는 더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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