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플랫폼)인 디즈니플러스에 가입해 둘러보다 어릴 적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자주 틀어줬던 ‘환타지아(1940년)’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영상을 켜자마자 이런 안내 문구가 나왔다.
‘본 프로그램에는 특정 인물이나 문화에 대한 부정적 묘사 또는 부적절한 대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그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옳지 않습니다. 해당 콘텐츠를 제외하기보다, 그러한 콘텐츠가 사회에 미친 해로운 영향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배우며 건설적 대화를 나눔으로써 보다 포용적인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디즈니는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의 풍부한 경험을 담아, 영감과 희망을 주는 스토리를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해당 애니메이션은 이 경고 문구를 10초 동안 보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는다. 디즈니가 잘못을 인정하고, 강제적이더라도 이용자들에게 경고 문구를 보여준 건 환타지아 속 내용에 인종차별, 성별 고정관념 등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고전 작품 속에는 여성 캐릭터의 성적 대상화, ‘나쁜 계모’ 고정관념 등 아이들이 보기에 그다지 교육적이지 않은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다. 환타지아를 비롯해 ‘피터팬(1953년)’ ‘아리스토캣(1970년)’, ‘알라딘(1992년)’ 등의 작품에도 해당 경고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다만, 경고 문구가 포함된 작품마다 어느 장면에서 어떤 혐오 표현이 담겨있는지 자세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디즈니플러스가 한국에 출시된 이후 여러 이용 후기들이 들려온다. 황당한 한글 번역 등으로 서비스 면에서 욕을 먹고 있지만, 이 ‘경고 문구’만큼은 디즈니플러스가 우리는 타 OTT와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가 아닌가 싶다. 분명 잘못된 콘텐츠를 만들었지만 반성하고, 사회적 다양성을 위한 내용을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디즈니를 보며 한국의 미디어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거 때가 되니 또 슬슬 이런저런 범죄를 페미니즘과 엮는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 또다시 일어난 교제 살인 사건과 관련, 제1 야당 대표가 이같이 발언하며 아무렇지 않게 여성 혐오를 조장하고, 유명인이나 공무원 등 여성에 대해 조작된 정보로 무차별적인 젠더 폭력을 가하고 있는 유튜버들이 등장하고 있는 시대. 이처럼 만연한 혐오를 막기 위해 언론은 얼마나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나. 이제는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지만, 이전 보도에 대한 반성은커녕 오히려 언론이 이들의 발언을 그대로 기사로 재생산해 혐오 표현을 공론장에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게 현재 상황이다.
최근 오보로 확인된 ‘흉기 난동에 도망간 양평 여경’ 보도와 남경은 제외하고 여경의 잘못만을 비난한 ‘인천 층간소음 흉기 난동’ 보도 등으로 언론의 몰지각한 행태가 또다시 비판받고 있다. 트위터 등 온라인상에는 혐오를 조장하는 언론사에 독자들이 항의 전화를 하고, 해시태그를 통해 인증하는 ‘#여성혐오방역_인증’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과 독자들의 인권 의식은 점차 높아지고 있는데 과거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국 언론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바뀔 때가 되지 않았냐’고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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