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찬성 여론 거센데… 언론은 여전히 '신중론'

경향·한겨레, 관련 보도 많은 반면
다수 언론들은 단발성 이슈로 다뤄

일부 언론 "차별금지법, 소수 특권
성실한 사람에 역차별" 주장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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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일은 ‘세계 인권의 날’이다. 73년 전 UN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발표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주지하듯 세계인권선언의 핵심은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우리 헌법 역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차별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남녀고용평등법이나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세부 법으로 구체화 되어 있다. 그러나 차별은 대개 복합적이고, 특정 사유나 영역에 한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개별적 차별금지법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법 앞에 평등’을 넘어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인권기본법으로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는 십수 년째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2007년 역시 민주당이 집권당이었을 당시 정부 입법으로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이후 18대 국회와 19대 국회에서도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한 채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 들어서도 차별금지법, 평등법 등 4개 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에서 언제 논의될지 기약이 없다. 지난 6월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국민동의청원이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서 해당 상임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달 10일까지 심사 결과를 내놓아야 했지만, 오히려 여야 의원들은 법안 심사기한을 21대 국회 임기 종료시점인 2024년 5월까지로 연기했다.

지난달 25일 한겨레신문 7면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성명이 담긴 전면광고가 게재됐다.


국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또다시 ‘나중’으로 미룬 이날,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며 부산에서부터 500km를 걸어 국회 앞에 도착한 활동가들이 있었다. 161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 소속의 두 활동가는 지난 10월12일부터 시민들과 함께 매일 100만보씩 도보 행진을 했다. 그러나 이를 주목한 언론은 손에 꼽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서 10월12일~11월11일 뉴스를 검색해보니 관련 보도를 한 곳은 중앙지 11개사 중 경향신문(12건), 내일신문(1건), 서울신문(3건), 한겨레(8건) 등 4곳뿐이었다. 방송사(KBS·MBC·SBS·YTN) 중에선 KBS만 지역총국에서 단신으로 보도했고, 경제지(8개사)는 전무했다.


비단 도보 행진만이 아니다. 차별금지법과 관련해선 언론사 간의 온도차가 매우 크다.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 글이 게시된 지난 5월24일부터 12월5일까지 언론 보도를 보니 적극적 ‘찬성파’인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보도 양이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많은 국민일보가 ‘반대파’를 대표한다면, 다수 언론은 보도 양 자체도 많지 않고 단발성 이슈나 논란 중심으로 다루는 경향이 강했다. 단적으로 신문사의 견해가 드러나는 사설만 살펴봐도 차별금지법에 관심이 많은 신문과 그렇지 않은 신문을 구분하는 건 어렵지 않다. 분석 기간 중앙지 11곳 중 차별금지법 관련 사설을 쓴 곳은 경향(2건), 서울신문(2건), 한겨레(6건), 한국일보(1건) 등이며, 총 11건에 불과했다. 국민동의청원이 3주 만에 10만 동의를 달성해도, 그렇게 상임위에 회부된 법안 심사가 사실상 무기한 연기돼도 대다수 신문의 사설란은 조용했다. 오히려 일부 언론은 이를 “신중한 모습”으로 평가했다. 지난달 25일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2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우리가 인권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라며 임기 중 첫 언급을 했음에도 역시 다수의 언론은 여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찬반을 떠나 차별금지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도하거나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를 주저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소수에게 특권을 주고 성실한 사람이 역차별당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을 하거나 반대 여론을 부각하며 이른바 ‘시기상조론’에 힘을 싣는 언론도 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시기상조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겨레가 지난달 25~26일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1027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차별금지법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71.2%로 반대 의견(21.7%)의 3배가 넘었다. 앞서 시사저널이 지난 6월22일 여론조사 기관 시사리서치에 의뢰에 전국 성인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찬성이 66.5%로 반대(33.5%) 의견을 크게 앞섰다. 차제연은 지난 10월28일 낸 논평에서 “정치권은 여전히 시간과 합의가 필요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제정을 검토하고 논의를 시작할 때는 이미 14년 전 도래하였고, 필요하다는 모종의 사회적 합의는 수년 전부터 발표되는 국민여론조사만 보더라도 머쓱한 일”이라며 “검토와 합의는 이미 지났고 지금 정치가 할 일은 ‘제정’ 단 하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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