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방영된 MBC 창사 6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에서 언론인 이용마의 유지를 발견했다면 당신은 그저 당신이 보고 싶은 것을 봤을 뿐인지 모른다. “존재함으로써 저널리즘을 얘기했던 것”(손석희 앵커) “힘들 때 바라볼 수 있는 별”(변상욱 앵커) “MBC를 너무 사랑한 사람”(김민식 PD) 같은 평이 담겼지만 이 다큐에서 정작 중요한 지점은 복수가 찬 배를 하고도 아들들에게 잔소리 하는 아빠, 해직되고도 아내에게 끝까지 미안하단 말을 안(못) 하던 남편, 투병 끝에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던 인간 이용마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은 어떤 선언이나 대의로 환원될 수 없다. 하지만 남은 이들 대다수에겐 그런 주장을 실현해 내는 것 말고 그를 추모하고 애도할 다른 방도가 없다. 이용마 기자는 생전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소수에 대한 감시도 좋지만 다수를 배려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해서 억울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 사회”를 바랐고, “따뜻한 뉴스를 많이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반면 “그가 바라던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이용마 기자 2주기를 앞두고 언론노조 MBC본부가 낸 성명 제목)고, “할 일을 마친 그의 뒤에 남은 이들의 몫만이 있다.”(다큐 내 자막)
이런 현실에 대해 MBC 기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기자협회보가 다큐를 통해 찾아온 이용마 기자를 계기로 남은 과제를 물은 결과 MBC 기자들은 공통적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선결과제로 꼽았다. 20년차 이상 A 기자는 “촛불집회는 물론 2016년~2017년 사회변화 분위기에서 이용마 기자 뿐 아니라 언론노동자, 시민사회 전반이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공영방송 틀을 꾸리고자 했고 민주당도 공감했는데 이뤄진 것 없이 5년이 흘러버렸다”며 “또 다시 저널리스트가 청와대 주인에 따라 회사 거취를 고민해야하는 일이 벌어지는 데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10년차 이상 B기자는 “정권 변화에 따라 회사 변화도 기정사실화 하는 구성원이 많아 서글프다”면서 “정치권 영향을 배제하는 최소한의 중립지대라도 만들어질 수 있는 대선후보들의 공약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현 지배구조가 MBC 보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데 우려도 나왔다. 15년차 이상 C 기자는 여당 비판에 자유롭지 못한 점을 보도 문제로 꼽으며 “누구 편도 들지 않으려는 독립 과정이었지만 현 상황은 문재인 정부 출발과 연관이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수뇌부처럼 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구조 자체를 부정할 순 없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할 시기를 놓쳤다. 선택을 했다고 본다. 적폐청산의 길을 택하며 최승호 사장이 왔고 불분명한 색깔의 사장은 못할 일을 했지만 잃은 게 있는 것”이라며 “아쉽지만 (선택의 결과란 점에서) 아쉽지 않은데 그 선택을 어떤 형식으로든 감당하게 되리라 본다”고 덧붙였다.
MBC의 뉴스 다양성과 조직문화에 대한 토로도 나온다. B 기자는 “우리 방송으로 벡델 테스트를 해보면 놀랄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시사·라디오 프로그램 대부분 진행을 남성이 맡는다. 여성구성원 역량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사회에디터, 사회부장, 캡, 바이스, 사건사고 전문기자까지 궂은 일을 여성이 도맡는 라인업이 구축됐는데 정작 시청자와 만나는 화면엔 여성이 없다”고 했다. 이어 “이마저도 해당 기수에 남자가 없거나 여의치 않아서인데 너무 뒤떨어진 것”이라고 부연했다. A 기자는 “메인뉴스 시간은 늘었는데 뉴스 내 다양성은 축소됐다고 본다”며 “늘어난 뉴스 시간을 채우는 데 급급해 기자들 역량을 다양한 통로로 발휘하는 분위기도 형성되지 못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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