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1조원이 넘는 정부광고를 집행하기 위한 새 지표가 확정됐다. 광고 효과를 열독률 조사로 책정하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핵심지표에 포함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제대로 된 기준으로 역할하지 못했던 ABC부수를 대체해 새 지표를 마련했다는 의의는 있지만 당초 개편이 추진된 이유라 할 ‘ABC체제’의 질서, 광고집행 관행을 넘어선 해법인진 의문이 남는다. 이에 투명성을 확보할 후속 대책이 더욱 필요해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일 한국ABC협회 유가부수의 정책적 활용 중단에 따른 대안으로 1조893억원(2020년 기준, 인쇄매체 2452억원)에 이르는 정부광고 집행을 위한 새 지표를 확정했다. 전국 5만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으로 광고효과를 파악하는 열독률 조사에 더해 언론사의 사회적 책임 이행여부가 핵심지표에 포함됐다. 언론중재위원회 직권조정·시정권고 건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등 자율심의 참여여부·심의결과, 편집위원회·독자위원회 운영 여부 등이 구간별로 차등 배점돼 집행기준이 됐다. 직원 4대보험 가입·세금납부 등도 기본지표로 참고한다.
‘ABC 유가부수’로 대표되는 정부광고 집행이 사실상 별 기준 없이 이뤄졌던 만큼 새로이 마련된 개편안은 의미가 있다. 이준형 전국언론노조 전문위원은 “ABC부수 지표는 있었지만 정부광고는 별 상관없이 집행됐고, 기준이 없던 것과 다름없는데 이를 규율할 수 있는 지표가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첫삽을 떴다고 평가한다”고 했다.
다만 이 의의를 빼면 이번 개편은 그 방향과 실효성 측면에서 여러 한계를 지닌다. 애초 ‘ABC유가부수 뻥튀기’ ‘과도하게 정부광고를 받은 특정 언론’ 등에 대한 문제제기로 시작된 사안은 ‘ABC 사태’를 통해 불거졌을 뿐 정부광고를 둘러싼 관행 전반의 개선을 요구하는 문제였는데 새 지표는 이를 해결하기 어렵다. 지표 자체의 적절성을 떠나 실제 광고주인 공공기관이 수용하고 이용할 여지가 크지 않아서다. 효과성과 사회적 책임 등이 포함된 개선지표는 광고주에게 제시될 순 있지만 강제성이 없고, 지표별 반영 비율은 광고주 마음대로다. 비판기사를 쓴 언론에 불리한 비율을 산정하고 반대일 땐 유리한 배점을 많이 부여하는 식으로, 단체장 호불호에 따라 집행될 가능성이 여전하다. 정부부처는 언론을 광고로 관리하고, 언론은 관리당하며 광고를 받는 공생이 이뤄진 사태의 근원, 즉 ‘ABC체제’의 문제해소는 어렵다는 의미다.
실제 전국 17개 시도 5만명을 대상으로 일정기간 이용자가 읽은 매체 비율을 따지는 열독률 조사는 기존 질서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 소지가 다분하다. 이 방식은 발행부수가 많고 인지도가 높은 매체가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기존 부수 기준과 별 차이 없는 지표란 점에서 ‘행정적 낭비’란 평도 가능하다. 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애초 문체부가 한국ABC협회 관리감독을 잘 했다면 이런 일은 불필요했다.
광고를 전공한 한 언론학자는 “애초 제기된 문제와 대책이 맞지 않는다. 부수 대체 지표로 가져온 열독률에 한계가 많다는 걸 인지하고 광고기준과 무관한 걸 덕지덕지 붙인 꼴”이라고 했다. 그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 정부가 설문을 하고 점수를 매겨서 광고를 주나. 광고효과나 미디어플래닝에 대한 고려는 차치하더라도 정부가 광고를 지원금으로 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며 “정부광고는 공공기관 각자 예산이다. 광고를 어디 주라고 할 권한이 없는 곳에서 이걸 참고해서 주라고 던진 셈”이라고 했다.
중소·지역매체의 어려움을 해소한 안이라 보기도 어렵다. 열독률 조사 시 거론되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나아가 일부 지표에선 차별요소도 발견된다. 예컨대 사회적 책임 지표엔 신문윤리위원회 서약참여여부 등이 포함됐는데 일간지만 서약참여가 가능해 지역 주간지 등은 참여가 불가능하다. 현재 신문윤리위 사이트에 게재된 서약 인쇄매체 수는 116개사에 불과하다. 문체부 등은 지역 열독률 조사 및 공개, 자율심의기구 활성화 등을 통한 보완 의견을 갖고 있지만 중소매체의 우려는 여전하다.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는 “부수에 따라 광고효과에 맞게 집행되지 않는 주먹구구 방식을 바로 잡았어야 하는데 죽도밥도 아닌 안이 나왔다”며 “구독을 해야 열독을 할 수 있으니 유료 구독부수를 세면 되는데 여론조사기관만 배불릴 열독률 조사를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조사에서 지역언론이 언급되긴 ‘짚더미에서 바늘찾기’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역농촌 매체에 대한 특별 가산점, 정부광고 지역쿼터제 등을 제안했다.
개편이 최소한의 실효성을 갖기 위해선 투명성 확보를 위한 후속 작업이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체부는 광고주와 광고내용, 매체명, 게재일 등 정부광고 집행내역 공개 방침을 지난 1일 밝힌 바 있다. 개선지표는 인쇄매체 2022년, 방송 등 기타 매체 2023년부터 적용된다. 이준형 전문위원은 “찬성하는 교수들조차 집행과정 혁신을 전제로 찬성하며 문체부가 손 놓고 있다는 데 우려를 표한다”며 “집행내역의 투명한 공개를 강제하는 법제화, 광고심의위원회 운영 등 후속작업이 있어야 개선지표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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