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 전두환씨… 전직 대통령 호칭도 매체별 차이

보수 매체는 주로 '전 대통령' 유지… 같은 매체서 호칭 오락가락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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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사망한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입구에서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이 사망 공식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직 대통령 전두환·노태우씨가 최근 사망하고 이들에 ‘전 대통령’ ‘씨’ 등의 호칭을 사용한 언론보도가 입길에 올랐다. 보수 성향 매체, 신문 전반, 통신사는 ‘전 대통령’, 진보 성향 신문과 방송은 ‘씨’란 호칭을 주로 사용한 모양새다.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지만 한 언론에서조차 일관된 기준 없이 ‘문제적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호칭을 오락가락 사용하는 행태에 개선이 요구된다. 호칭 선택은 언론이 한 인물을 평가하는 유의미한 행위이고 이번 논란에서 보듯 그런 선택은 매체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로 고스란히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본보가 전두환씨 사망일인 지난달 23일 이후 종합일간지 9곳, 경제지 3곳, 통신사 3곳, 방송사 5곳 등 20개 언론 관련 기사를 살펴본 결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국민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한국일보 등 주요 종합일간지는 전씨를 ‘전 대통령’으로 적시했다. 한국경제와 매일경제도 마찬가지였으며 머니투데이에선 기사에 따라 ‘전 대통령’과 ‘씨’가 혼재했다. 통신사 연합뉴스, 뉴스1도 ‘전 대통령’으로 표기했고, 뉴시스에선 양 호칭이 공존했다. 반면 종합일간지 중 진보성향 매체인 한겨레와 경향신문, KBS, MBC, SBS, YTN, JTBC 등 방송사는 ‘전두환씨’란 호칭을 사용했다.

이 같은 호칭 차이는 용어 선택 자체가 특정 인물에 대한 평가를 담보하기 때문에 생긴다. 언론사별 정치성향과 판단이 다르기에 호칭 역시 같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일례로 ‘문제적 전직 대통령’에 ‘씨’란 호칭을 사용하는 언론은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든다.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전씨, 노씨를 대통령으로 예우하지 않는 게 헌법정신에 부합한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호칭엔 강제규정이 없다. ‘씨’란 표현이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 수 있고, 대통령을 지낸 사실은 맞기에 ‘전 대통령’을 쓰기도 한다. 더불어 언론은 법적 판단 밖에 존재하는 나름의 사회적 평가를 고려해 명명할 수도 있다. 언론의 특권이 아니라 민주사회에 사는 모두가 그렇다. 결국 모두가 말하는 과정을 통해 다수 합의에 이르는 정도가 가능한 일에 언론 역시 각자 목소리를 냈고 이를 평가받은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말뿐이라 여길 수 있지만 호칭과 단어는 그 자체로 특정 인물의 평을 사회에 남기는 행위다. 예컨대 진보성향 신문과 방송 등은 전 씨의 죽음을 ‘사망했다’고 표현했다. ‘전 대통령’이란 호칭을 사용했던 한국일보, 서울신문, 연합뉴스, 뉴스1, 뉴시스 등 매체도 ‘사망했다’를 선택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세계일보만이 ‘별세’란 단어를 썼으며, 나머지 매체에선 ‘사망’과 ‘별세’가 함께 사용됐다. 최문선 한국일보 정치부장은 최근 칼럼 ‘대선공약: 서거하기’에서 “중앙일간지 10곳 중 한국일보를 포함한 6곳이 ‘전두환 사망’이라고 보도했다. ‘서거’ ‘타계’ ‘별세’에 담긴 정중함과 우러름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이를테면 말로 한 부관참시 의례”라고 했는데, 이런 표현의 의미를 엿볼 수 있는 문장이다.


개별 언론을 넘어 여러 매체가 사용한 경향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도착한 ‘합의’가 모습을 드러낸다. 실제 함께 내란 혐의 실형을 받았지만 전씨보다는 나은 사회적 평가를 받는 노태우씨 사망 당시 언론보도에는 ‘전 대통령’ ‘별세’란 표현이 전씨보다 더 많았다. 전씨 호칭과 관련해 해외 매체가 ‘전 독재자(former dictator, strongman)’, ‘전 대통령(ex-president)’이란 표현을 제목에 사용해 화제가 됐지만 국내언론 뉴스 제목에서도 ‘학살자’나 ‘내란 수괴’ 등 표현은 확인할 수 있다. 애초 영어권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더 많은 설명을 제목에 담을 필요성이 크기에 동등한 비교는 무리가 있기도 하다.


전직 대통령 호칭 논란에서 언론이 돌아볼 지점은 일관된 기준의 부재다. 전씨·노씨의 사례만 해도 한 언론사 내에서 나온 기사들이 ‘사망’과 ‘별세’, ‘전 대통령’과 ‘씨’를 구분치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경향신문과 JTBC를 제외하면 ‘전직대통령 예우’ 등을 근거로 ‘씨’ 호칭을 사용한 언론이 같은 기준을 적용받는 이명박·박근혜씨에 대해선 ‘전 대통령’이라 쓰는 일도 다수 확인됐다. 앞서 JTBC는 지난해 10월29일과 올해 1월14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금고형 이상의 대법원 판결 후 ‘뉴스룸’에서 “더 이상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하지 않는다”며 전직 대통령 이명박·박근혜‘씨’로 호칭을 바꾼다고 밝힌 바 있다.


언론사에서 더 중요한 점은 결론의 내용이 아니라 여기 이르는 구성원들의 논의·합의 과정이다. 경향신문은 지난 10월5일 독립언론실천위 활동을 전한 기사에서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란 호칭을 사용키로 한 편집국 방침에 오히려 기자들이 감정적인 대응으로 비칠 수 있다는 의견 등을 전한 논의 과정을 담았다. 한겨레 역시 지난달 4일 노태우씨 사망보도 경위를 전한 뉴스레터에서 편집국 내부 논의, 대편집회의 의견조율 등을 거쳐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이라고 쓴다’, ‘기사 첫 부분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라 언급하고 뒤부턴 노태우씨·노씨로 쓴다’, ‘별세 표현은 쓰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과정을 상세히 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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