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3년차, 그때 송승환<사진> 중앙일보 기자는 일반 시민과 기자의 경계선에 선 기분이었다. 그 전까진 뉴스 소비자에 가까웠던 자신이 생산자가 돼가는 걸 깨달은 때였다. 연차가 쌓일수록 경계선은 흐려지기 마련이다. 송 기자는 이 선 위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잊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기록하기로 했다. 어느덧 6년차인 그는 지난 10월 말, 주니어 기자로서 현장에서 마주한 저널리즘과 언론윤리를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한 그는 나름대로 저널리즘 기본 원칙을 익히고 기자가 됐다. 하지만 책과 현장은 달랐다. 특히 저널리즘 기본서는 대부분 미국 언론인이 펴낸 터라 한국 언론환경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었다. 현장을 찾고 취재원을 만나고 기사를 쓰면서 ‘이게 맞나’ 싶은 순간이 많았다. 그때마다 정답을 찾기 어려웠다. 다들 그렇듯 체계적인 윤리 교육을 받지 못한 데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은 너무 숭고하고 거대하게 느껴져서 급박한 현장에선 바로 따르기 힘들었다.
송 기자는 스스로 저널리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3년차이던 2018년 중앙일보·JTBC 동기들과 스터디를 꾸렸다. 모임 이름은 ‘주니어 기자 저널리즘 스터디’에서 앞 글자를 딴 ‘주저스’로 정했다. “저널리즘 기본서를 보면 공감이 안 되고,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도 있었거든요. 동기들과 기본서 여러 권을 읽고 주요 개념을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토론했어요. 2019년 1월부터 2020년 4월까지 팟캐스트도 하면서 주니어 기자들의 생각과 고민을 공유하기도 했고요.”
현장에서 써먹을 저널리즘을 공부하다보니 더 큰 차원의 고민이 생겼다. 시민들의 언론 혐오다. “기자는 신뢰로 밥 먹고 사는 직업인데, 불신을 넘어 기자라면 쳐다보기도 싫다는 분들이 많아요. 인터뷰를 요청하면 ‘너희들 때문에 얼마나 힘든데 뻔뻔하다’면서 화내시는 경우도 있고요. 현장 기자들은 이제 정말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을 느끼고 있어요.”
송 기자는 언론이 투명해져야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자와 시민이 서로를 잘 알아야 제대로 논쟁하고 화해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시민과 기자의 경계에 있는 그가 언론이 작동하는 방식, 기사를 만드는 과정, 현장에서 맞닥뜨린 언론윤리를 53가지 장면으로 풀어낸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을 쓴 이유다.
“기자들은 댓글을 읽으면서 상처받고 답답해해요. 기사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면서 욕만 한다고요. 그 과정을 설명해주지 않으니 시민들은 모를 수밖에 없고, 오해가 쌓이는 거죠. 책 제목에 ‘기레기’를 넣은 것도 그게 현실이기 때문이에요. 다들 기레기라고 부르는데 기자들만 ‘아닌데’ 하면 대화가 안 돼요. 시민들에겐 왜 그런 말이 생겼는지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 제 또래 기자들에겐 기레기가 되지 말자는 중의적인 의미로 책 제목을 지었어요.”
송 기자는 자신의 첫 책을 “딱 6년차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과할 정도로 쉽게 쓰자는 생각이었다. 언젠가 한층 깊어진 시각을 담아 개정판을 내고픈 욕심도 있다. “기자로 열심히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실천하려 해요. 제가 쓴 기사의 생산 과정을 담은 ‘기사 발자국’도 시도하고 싶고요. 자조적이기 보다 기자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싶어요.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기자들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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