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낮 뉴스에 시사토크 접목… 차별화 전략, 절반의 성공

[개국 10년차 종편이 걸어온 길 (下)] 저널리즘의 얼굴을 바꿔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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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일 개국 10주년을 맞는 종합편성채널은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된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뤘다. 그런 양적 성장을 발판 삼아 종편이 질적 도약에도 성공했을까. 이른바 ‘종편 저널리즘’이 방송을 넘어 우리 언론 전반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긍정도, 마냥 부정만 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투머치’ 정치 뉴스로 상업적 성공·영향력 동시에

‘정치 과잉’. 초기 종편의 특징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신문사가 만든 방송사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칠 만큼 시사·보도 일색이었고, 그 중심에 정치가 있었다. 개국 2년에 즈음해 MBN, TV조선, 채널A 등 종편 3사의 시사 보도프로그램 비율은 최대 60%를 넘었다. 지상파 3사(KBS·MBC·SBS)의 거의 두 배 수준이었다. ‘유사 보도채널’이란 말까지 나왔고, 이른바 ‘종편 찬성론자’들 사이에서도 ‘이럴 거면 뭐하러 종편을 했나’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방송평가와 재승인 심사에선 번번이 시사·보도 편성 비율이 문제로 거론됐다.


정치 뉴스는 종편 생존 전략의 하나였다. 개국 초기 잇단 프로그램의 실패와 누적된 적자로 종편은 ‘저비용·고효율 콘텐츠’로서 시사 프로그램을 늘려갔다. 제작비가 많이 드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아닌 정치 등 시사를 주제로 ‘떠드는’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이 주를 이뤘다. 모(母) 신문사 소속 논설위원 등 전·현직 언론인과 정치인들이 대거 스튜디오로 불려 나왔다.


이는 기존 사업자이자 경쟁자인 지상파와 차별화한 전략이기도 했다. 지상파에서도 정치 뉴스는 중요하게 다뤄졌다. 하지만 공정·객관·균형성을 요구받는 방송 특성상 대체로 밋밋하고 심심했다. 오랜 시간 정치나 시사는 무겁고 엄숙한, 따분한 것쯤으로 여겨졌다. 종편의 승부수는 바로 여기 있었다. 2018년 유수정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박사는 ‘종편 출범 초기의 지상파와 종편 메인뉴스의 주제 구성 및 다양성 변화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 비용을 적게 들여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은 이념성을 채택하는 것인데, 종편 뉴스는 이러한 전략을 택함으로써 시청자들을 끌어 모았”다고 설명하며 “종편은 정치 주제를 확대함으로써 중장년층의 시청자를 확보했으며, 지상파에서 볼 수 없었던 강한 논조를 피력함으로써 차별화했다”고 분석했다.


종편이 정치적 쟁점에서 이념적 지향과 논조를 강하게 드러내면서 사실과 의견, 논평의 경계가 허물어졌고,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의 구분이 무의미하거나 불가능해졌다. (윤성옥 ‘종편채널과 보도 프로그램의 문제점’) 정치는 예능이 됐고 쇼가 됐다.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이를 두고 “막걸리 한잔 놓고 예전에 5, 60대 남성들이 욕하면서 하는 정치 해설”이라며 “막걸리 비평”이라고 촌평한 적 있는데, 말하자면 ‘나는 꼼수다’가 종편식으로 재해석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과거 ‘나꼼수’가 그랬듯 종편은 보수정권하에서 공영방송이 침체한 틈을 비집고 시청률과 영향력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런 ‘종편 저널리즘’은 지상파는 물론 유튜브 기반 시사평론 확산에도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저널리즘의 유형을 만들었다.

‘탈종편’ JTBC, 방송뉴스의 역사를 다시 쓰다

종편 저널리즘은 지상파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왔다. 대표적인 게 낮 뉴스의 등장이다. 낮 시간대 편성을 주로 재방송 위주로 채웠던 지상파 방송사는 종편의 선전에 자극받아 2017년부터 낮 뉴스를 집중 편성하기에 이른다. 이제 낮 시간대는 ‘시청 사각지대’가 아닌 시청률 경쟁이 벌어지는 치열한 격전장이다.


그보다 앞서 지상파의 메인뉴스도 달라졌다.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 인력에 특정 시청자층을 겨냥한 전략으로 ‘선택과 집중’을 택한 종편과 달리 지상파는 오랜 시간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를 고려한 다양성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종편 출범에 보도전문채널까지 2개로 늘어나면서 뉴스 시장의 경쟁이 증가하자 지상파 뉴스도 형식적인 차별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한수연(2015년)은 서울대 언론정보학 석사 논문 ‘종합편성채널 출범이 지상파 방송 뉴스에 미친 영향’에서 “종편의 출범은 지상파 뉴스의 1일 평균 아이템 수 감소와 이에 따른 아이템별 보도시간 증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1분30초의 리포트로 도식화된 천편일률적인 형식과 백화점식 보도 관행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JTBC, 정확히는 ‘손석희의 뉴스룸’이었다. 편집권과 인사권을 가진 보도담당 사장이 직접 앵커를 맡는 초유의 실험을 통해 JTBC는 방송뉴스의 역사를 다시 썼다. 팩트체크 시스템 도입과 다양한 포맷의 뉴스 구성 등은 이제 보편화 됐지만, 이전엔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JTBC 뉴스룸의 모토인 ‘한 걸음 더 들어간 뉴스’, 손석희 앵커가 강조해온 ‘아젠다 키핑’도 방송가에서 통념처럼 자리 잡았다.


JTBC가 다른 종편 3사와 구별되는 결정적인 지점은 저널리즘이다. 2013년 9월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 손석희 앵커를 내세운 JTBC 뉴스가 본격적으로 도약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세월호 집중 보도 이후였다. 그때부터 JTBC의 위상은 한 해가 다르게 높아져 갔다. 그해 8월 한국기자협회 여론조사에서 ‘신뢰하는 언론사’ 순위권에 처음 진입한 JTBC는 이듬해 5위, 2016년엔 2위로 올라섰고,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 1위를 차지했다. 미디어미래연구소가 전국의 미디어 학자를 대상으로 매년 시행하는 미디어 신뢰성 평가에선 2014년부터 줄곧 1위다.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하는 이달의 기자상 수상실적만 봐도 JTBC는 개국 이후 2021년 10월까지 38편의 수상작을 내 TV조선(16편), 채널A(6편), MBN(2편)을 월등히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탄핵 정국의 방아쇠를 당긴 ‘태블릿PC’ 보도가 나온 2016년 10월 전후로는 시청률도 급증해 최고 시청률이 10%를 넘기도 했다.


하지만 2019년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시청률은 하락했고, 각종 신뢰도 조사에서 순위나 수치도 떨어졌다. 올해 기자협회 여론조사에서 JTBC의 신뢰도 순위는 9위였다. 한국갤럽이 분기별 실시하는 뉴스채널 선호도 조사에서 2017년 1분기 44%로 정점을 찍었던 JTBC는 올 2분기 조사에서 처음으로 한 자릿수(9%)까지 내려왔다. ‘포스트 손석희’의 부재, ‘조국 사태’ 영향, 공영방송의 약진 등 다양한 이유가 거론된다. 지금껏 ‘탈종편’ 행보를 보여온 JTBC가 종편을 넘어 타 방송, 언론과의 차별성을 고민할 시점이 된 것이다.

백가쟁명 시대 ‘영원한 강자’는 없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JTBC가 뉴스에서나 광장에서나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던, 그런 상황은 다시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갤럽의 뉴스채널 선호도 조사에서 2013년 1분기만 해도 69%를 차지했던 지상파 3사의 비중은 5년째 30%대에 머물러 있다. 2017년 1분기 JTBC의 선전에 힘입어 51%를 기록했던 종편 역시 20%대로 떨어졌다. 올 2분기 기준 채널 범주별 선호도는 지상파 32%, 종편 22%, 보도전문 18%로 비교적 고르게 나뉘었다. 한국갤럽은 “국정농단 사태 이후 시민 정치성향과 관심이 다원화되면서 뉴스 채널 선호 역시 분화했다”고 분석했다. 미디어 환경이 바뀌고 정치성향에 따른 뉴스 소비가 늘어나면서 과거와 같이 전국민적 지지를 받는 압도적 1위는 나오기 힘든 환경이 됐다. 2020년부터 시청률은 물론 각종 신뢰도·영향력 조사에서 두드러진 성장을 보여주는 TV조선 역시 특정 연령층과 특정 정치성향에 갇힌 한계가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18~29세와 30대에서 TV조선을 즐겨본다는 응답은 각각 1%에 불과했다. 반면 60대 이상에선 KBS(26%) 다음으로 많은 18%였다. 성향별로 보면 보수에서 가장 많은 응답자(18%)가 TV조선을 꼽은 반면, 중도와 진보는 각각 7%, 2%에 불과했다. 반면 JTBC는 진보 성향에서 MBC(17%)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지지를 받았고, 중도와 보수에선 각각 9%, 5%를 얻었다. 과거 조사결과와 비교해 보면 TV조선이 KBS의 보수 시청자층을 일부 흡수했고, JTBC는 진보 성향 시청자를 MBC에 일부 뺏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설상가상 이제는 유튜브 등 OTT와도 경쟁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야말로 백가쟁명의 시대, 내년 대선이 종편 제2의 도약의 모멘텀이 될 수 있을까. 또 다른 10년이 지난 뒤에 웃고 있을 종편은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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