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뉴스, 모두의 뉴스룸을 위해

뉴스룸의 다양성을 고민하는 국내외 여성 언론인의 분투 기록한 '다큐멘터리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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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방송된 KBS 다큐인사이트 '다큐멘터리 뉴스룸'의 한 장면

“오늘만큼은 제 수신료가 아깝지 않았어요!” “모두의 뉴스를 모두의 뉴스룸에서 만드는 날이 꼭 오길 소망합니다.” “다양성이 있는 언론, 사회, 조직이 되길 바라며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어제(18일)저녁 KBS 다큐인사이트 ‘다큐멘터리 뉴스룸’ 방송이 나간 뒤 시청자게시판에 남겨진 소감들이다. ‘다큐멘터리 뉴스룸’은 지난여름부터 방송된 ‘다큐멘터리 개그우먼’, ‘다큐멘터리 윤여정’, ‘다큐멘터리 국가대표’에 이은 여성 아카이브×인터뷰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다. 전작들은 연예계와 스포츠계에 만연한 성차별 문제와 성평등을 위한 노력을 담아 호평을 받았는데, 한편으론 ‘그러는 너희는?’이란 질문을 필연적으로 맞닥뜨려야 했다. 여기서 ‘너희’란 넓게는 언론계, 구체적으로는 KBS라는 조직을 가리키는 것일 테다. 지난 9월 KBS 시청자위원회 회의에서 한 위원이 “여기(‘다큐멘터리 국가대표’)에서 던진 성차별 화두가 과연 KBS 안에는 없는지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였다.

그러니까 ‘다큐멘터리 뉴스룸’은 그에 대한 대답인 동시에, 뼈아픈 자기 성찰인 셈이다. 다큐가 소환해낸 KBS의 과거 뉴스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KBS 9시 뉴스가 수십 년을 이어온 ‘중년 남성 기자와 젊은 여성 아나운서’ 앵커라는 틀을 깬 지는 불과 2년밖에 안 됐다. 2019년 11월, ‘40대 여기자’인 이소정 앵커가 뉴스9 메인앵커로 발탁된 사실은 그야말로 ‘빅 뉴스’였다. 뉴스의 ‘얼굴’이라는 앵커만이 아니다. 다큐 제작진이 지난 9월 한달간 뉴스9 속 기자를 제외한 출연자 성비를 분석해 보니 남성이 73.1%, 여성이 26.9%였다. 이는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2020 GMMP(글로벌 미디어 모니터링 프로젝트) 보고서는 전 세계 뉴스에 등장하는 전문가의 24%, 기자의 40%만이 여성인 것으로 분석했다.

KBS 뉴스에 등장하는 여러 직군의 남성 출연자들. 지난 9월 기준, 여성 출연자의 비중은 남성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내 여기자의 비율은 10%대에 불과했다. 남성 중심의 보도국이 세상을 보는 시각은 뻔했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피해자가 뭘 잘못하지 않았을까, 피해자가 조심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시각이 많았다고, 27년차 기자인 선재희 KBS 해설위원은 회상했다. 선재희 위원은 KBS 해설위원실의 유일한 여성인데, 지난달 한국성폭력상담소 창립 30주년의 의미를 짚는 뉴스 해설로 SNS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행인 건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KBS 뉴스9에서 여성 기자가 보도한 비율은 45.9%를 차지했다. 여성 앵커와 여성 기자가 함께 대담하는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됐다. 이소정 앵커는 말했다. “형식의 변화 자체가 메시지일 수 있다.”

해외에선 더 광범위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니먼 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상위 언론사 20곳 중 12곳을 여성/유색인(비백인)이 이끌고 있다. 미국 AP통신 신임 CEO 데이지 비라싱엄은 175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비백인/비미국인이다. 뉴욕타임스는 남성과 여성 외부 칼럼니스트 수를 동일하게 구성하고, 여성 중심의 보도를 위한 특별팀을 운영 중이다. BBC에선 2017년 남녀 임금 격차(gender gap)가 드러난 뒤 ‘동일임금(equal pay)’ 운동이 일어나 3년 연속 성별 격차를 줄여가고 있으며, 역시 BBC에서 시작된, 남녀 출연자 비율을 맞추는 ‘50:50 프로젝트’는 일본, 케냐 등 전 세계 26개국 120개 언론으로 확산했다. BBC는 배경과 상관없이 최고의 인재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저널리즘의 품질은 좋아졌다. 16~37세 영국 시청자의 58%가 ‘50:50’ 덕분에 BBC 콘텐츠를 자주 보게 됐다고 했다.

나야 닐센 BBC 디지털 뉴스 대표는 “성비가 50대 50이 되고, 직원의 20%는 흑인과 아시안, 다른 소수 인종이며, 12%는 장애인으로 구성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것이 “영국 인구 비율과 굉장히 가깝기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다양성은 우리를 도와줍니다.” 전 뉴욕타임스 젠더 전문 편집자인 프란체스카 도너도 “우리의 이야기에 다양한 관점이 반영돼 있는가”라고 물으며 “그 고민이 있어야 더 나은 뉴스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주요 언론사 대표 등 뉴스룸 리더 20명 중 12명은 여성이거나 비백인이다.

‘50:50’이 역차별은 아닌가? 하는 물음에 BBC 서울 특파원 로라 비커는 답했다. “자격 미달인 여성을 남성에 앞서 선택하는 게 아니에요. 그 역할에 적합한 여성 지원자들에게 자신감을 주자는 거예요.” 6년차인 이화진 KBS 기자는 이제 남성 중심 시각에서 여성의 시각으로 조금 넘어왔을 뿐, 궁극적으로는 더 다양한 목소리와 시각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양성을 뉴스에 담는 것이야말로 보편적인 뉴스, 모두의 뉴스”라는 게 그의 말이다.

그런데도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로라 비커가 이렇게 한마디를 던질 것이다. “Come on, KBS. you know it makes sense.” (KBS! 옳은 일이란 걸 알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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