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국회에선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여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막겠다며 국민의힘 의원들이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장 앞에 도열한 채 항의 시위를 벌인 것인데, 이 장면이 흥미로웠던 건 이들이 손에 든 종이 팻말에 적힌 글귀 때문이었다. ‘언론재갈! 언론탄압! 무엇이 두려운가!’, ‘언론말살! 언론장악! 민주당은 중단하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취재·보도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으니 ‘언론재갈법’이라 하는 건 그렇다 쳐도 언론탄압이나 언론장악, 언론자유 같은 구호가 국민의힘에서 나온다는 건 아무래도 이질감이 컸다.
가까이 ‘이명박근혜’ 정권 시절만 해도 처참했던 ‘방송장악’ 역사 등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문제는 그 DNA가 남아 있기라도 한 것인지 아직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도 아닌데, 국민의힘이 벌써 언론탄압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가 한겨레에 광고 중단을 통보한 게 단적인 예다. 한겨레는 지난달 28일 ‘“시 곳간이 시민단체 ATM”이라더니…근거 못대는 서울시’란 기사에서 오 시장의 무리한 ‘박원순 지우기’를 비판했는데, 이 직후 서울시는 한겨레 광고국에 다음 달 예정된 광고 집행을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삼성 등 일부 기업이 특정 매체에 광고를 중단한 적은 있지만, 서울시 같은 공공기관에서 특정 언론에 광고를 거부한 건 전례가 거의 없는 일이다. 한겨레 기자 출신인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9일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도 지난 2일 의원총회에서 “땡전뉴스가 부활이라도 한 듯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려는 그 반민주적인 발상이 2021년에 버젓이 존재한다니 개탄스러울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또 TBS의 내년도 출연금을 당초 TBS가 요청한 375억원에서 33%을 삭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삭감된 123억원은 TV와 라디오 제작비의 97%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상업광고가 금지된 TBS로선 사실상 모든 방송제작을 중단해야 하는 걸 의미한다. 서울시는 ‘재정 독립의 필요성’을 얘기했지만,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정치적 편향을 문제 삼는 걸 모르지 않는다. 전국언론노조 TBS지부는 “돈줄을 옥죄어 언론의 입을 막은 과거 독재자들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며 “오세훈 시장의 언론장악이 시작됐다”고 했다.
여의도에선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언사가 오갔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KBS 사장 선임을 앞두고 특정 후보를 배제할 것을 주장했고, 이사회의 임명제청이 끝난 뒤에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사장 재공모를 주장하기도 했다. 대통령 후보 합동 토론회에선 “문재인 정권이 임명한 KBS, MBC, YTN 사장들 그대로 둘 거냐”, “언론이 굉장히 중요한 권력의 한 축인데 그걸 어떻게 그렇게(그대로 두겠다고) 하느냐” 같은 믿기 힘든 발언도 나왔다. 이러니 불과 두세 달 전, 국민의힘 의원들이 소리 높여 외치던 “언론자유” 구호가 정략적 위선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언론개혁 약속을 침묵으로 뭉갠 지금의 여당, 언론탄압 본색을 숨기지 못하는 과거의 여당.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확실한 건 어느 쪽도 해피엔딩은 아니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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