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업계에 느낀 실망이 임계점 넘을때, 기자는 떠난다
[기자들 '언론계 엑소더스' 가시화]
일 본연의 의미와 가치 훼손 느껴
인력충원 통해 노동 강도 완화하고
보람·의미 느낄 계기, 회사가 줘야
왜 기자를 관뒀나요? “네이버 종속 때문에요.” 올해 스타트업으로 직장을 옮긴 10년차 미만 전직 기자가 답했다. “스타트업은 고객이 누군지 정의하고 니즈를 명확히 파악해서 맞는 서비스를 만드는 조직이잖아요. 언론사도 콘텐츠 기업으로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데 총체적인 한계를 본 거 같아요. 네이버에 잘 걸리는 걸 바랄 뿐이니까. 제목 경쟁, 기사 수 경쟁도 신물이 난 거고요.”
어떤 실망은 퇴사까지 이어지고 만다. “경영진이 포털을 말해도 편집국 선배들만큼은 저널리즘이나 디그니티(dignity)를 얘기했으면 했는데 언론구조가 그러다보니 편집국장이나 부장이 나서서 이익을 말씀하시고...그런 데서 좌절했죠. 다른 언론도 개선의 여지가 안 보이니까 젊을 때 다른 일 하자 한 거고요.” 그는 나중에도 언론사로 돌아올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한 업계에서 사람들이 떠나간다. 특히 어린 연차들이 그런다. 단순히 젊은 기자의 치기라거나 개인의 선택이었다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위 대화에서 보듯 젊은 기자들의 퇴사는 기자 개개인에게 경험의 형태로 제 모습을 드러내던 언론계의 구조적 문제가 축적되다 임계점을 넘어선 순간 ‘탈출’의 형식으로 나타나는 데 가깝다. 이들의 실망에 대한 관리 실패는 언론사의 과실이자 결국 과업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문제다.
‘낮은 급여’, ‘워라밸 미보장’, ‘미래 불투명’, ‘기자 명예실추’...그래서 나간다
언론 종사자라면 모두가 이유를 안다. 결심은 개인적이지만 그 선택엔 언론 업종의 사양 산업화, 기자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부정적 인식 등 공통의 배경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언론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고민이 이탈을 하게 만드는 듯하다. 언론인의 미래에 대한 회의감을 많이 느낄 수밖에 없는 시기이다보니 더 나은 대우를 기대해서라기보다 내 답답한 현실이 다른 회사에선 다르지 않을까 기대가 있는 것 같다. 이직을 하고 또 이직하는 케이스도 봤다.”(김슬기 매일경제 노조위원장) “대우만 해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10여년 새 많이 무너졌다. 월급 자체도 다른 데와 비교해 많지 않은데 언론인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게 당연히 아니니까 버틸 수 있는 고리가 약해졌다. 일은 힘들고 워라밸도 어려우니 최소한 그걸 상쇄할 만큼 대우라도 해줘야 한다는 게 전반적인 인식 아닐까.”(김인원 조선일보 노조위원장)
격무와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 ‘워라밸’이 보장 안되는 삶 등 전통적으로 기자 직군에서 당연시한 열악한 노동조건은 여전하다. 직업으로서 매력이 떨어진다. 지난 9월 자사 기자들의 퇴직 현황을 다룬 동아일보 노보엔 7~10년차 쯤 학교 동기, 친구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았던 연봉이 역전돼 “현타”가 오고, “근무 여건이 나쁘고 자기계발 할 시간도 부족한 직업인데 임금 수준마저 상대적으로 낮아진다면 굳이 이 직업에서 버틸 이유가 뭔가 자문하게 되는 것”이란 기자의 토로가 담겼다. 퇴근 후 뭐라도 배워보려 강습을 등록했다가 “수시로 회사 전화가 왔고 학원 복도에 앉아 40판, 45판 기사를 쓰기 일쑤였다”는 ‘저녁이 없는 삶’에 대한 젊은 기자의 원성도 포함됐다.
소위 ‘메이저’ 매체가 이렇다면 작은 언론사의 고민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경영여건, 처우, 언론사로서 영향력 등 여러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에서 운영되는 만큼 인력유출을 막을 장치가 마땅치 않아서다. “방송 3사나 매경·한경, 조중동 기자들이 타 직종으로 간다면 우리 매체 같은 곳에선 더 매체력이 있거나 급여가 높은 다른 언론사로 간다는 차이는 있다. (이탈을 막으려면) 처우 개선이 직접적인데 그러려면 매출이나 이익을 늘려야 하고 무리한 기사나 영업 등 방식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가 있다.”(김형욱 이데일리 노조위원장)
이탈 막는 방법론으로서 ‘저널리즘’
그렇게 인터넷 매체·마이너 신문사 기자는 ‘메이저’ 신문사로 이직을 하고, ‘메이저’ 신문사 기자는 방송사로 이직하거나 아예 다른 업종으로 전직을 하며, 방송사 기자는 전직을 생각하는 흐름이 존재한다. 인력이 몰리는 극소수 매체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제대로 된 언론사이자 정상적인 기업으로 존립을 불가능하게 하는 문제에 해법은 없을까. ‘뽑은 만큼 나가서 다시 뽑았더니 또 나가는 일’은 이미 상당수 언론사의 현재다.
우선 가장 시급한 지점은 언론 본령의 가치를 방점에 둔 뉴스룸의 노선 설정과 실행이다. 언론인으로서 열정과 꿈이 가장 클 시기인 젊은 기자들이 일의 의미와 가치를 실현하게 도움으로써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론으로서다. “기사를 쓰고 지면을 만들고 사회적 파급을 일으키는 일이지 않나. 아무리 신뢰가 떨어지고 인정을 안 해줘도 책임감과 사명감은 자연스레 쌓이는 거고. 다들 받는 월급에 비해 너무 진지하게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토론하고 답을 찾으려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웃음) 다시 언론사를 선택하면서 ‘내가 이 일을, 이 사람들을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일반회사엔 못 가겠다 싶었다.”(7년차 미만 한 기자)
“돈을 많이 벌려고 기자를 한다”는 명제는 불가능할 만큼 언론 산업 사양세는 분명하다. 그걸 바라서 기자를 하겠다는 경우는 없다. 문제는 언론이 이들에게 다른 보람과 의미를 찾아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얘기를 나눠보면 기자로 제대로 활동할 수 있고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하겠다는 젊은 기자들이 많았다. 법조나 정당처럼 힘든 부서를 가고 싶어하는데 탈수습을 하자마자 기업 대관 업무를 상대하다 지치는 일도 있는 거 같다. ‘빈칸 채우기식, 마구잡이식’ 인사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개인 경쟁력을 키우려는 고민이 클 텐데 돕는 환경은 아니지 않나. 일단 사측에 젊은 기자들 의사를 최대한 반영한 인사를 부탁했다.”(조성은 언론노조 국민일보지부장)
비전 제시·근무여건 개선해야
디지털 전환 계획 수립과 이행 등 소속 매체 비전을 체감할 수 있는 회사의 시도 역시 필수적이다. 암울한 환경과 별도로 조직의 비전 부재는 젊은 기자들의 불안을 키워 주된 퇴사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앞선 동아일보 노보엔 “조선은 구독 수에서, 중앙은 디지털에서, 한겨레·경향은 젠더·사회 문제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근데 우리 회사는 무슨 분야에서 앞서고 있느냐” “과거 선배들은 (중략) ‘동아 뽕’이라도 맞으며 버텼는데 그런 것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타사가 신형 배로 갈아탔다면 우린 침몰하는 구식 배를 타고 노를 젓는 느낌”이란 기자들 목소리가 담겼다. 매체명만 바꾸면 대다수 언론에 해당되는 이야기들이다. 이미지 동아일보 노조위원장은 “젊은 기자들일수록 직장이 돈을 버는 곳을 넘어 함께 커가는, 종사하는 업종에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더 바라는데 회사에서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했다.
기자들의 근로조건을 최대한 정상적인 기업 수준으로 부합시키려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기자 다수 퇴사를 다룬 지난 10월 한국경제신문 노보 기사에서 퇴사자들에게 젊은 직원 이탈을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해법을 물은 결과 ‘인력 충원을 통한 노동강도 완화’ ‘임금 등 근로조건 개선’이 가장 많은 응답을 받았다. 경제지 한 기자는 “얼마 전 사측과 기수별 간담회에서 많은 기자들이 회사에 남을 유인으로 자기계발 지원을 꼽았다. 특파원이나 연수, 대학원 비용지원 등이 대표적”이라며 “돈을 많이 벌려고 언론사에 온 사람은 드물다. 소모된다고 느껴질 때 리프레시 할 수 있고 성취감을 주는 일은 기자들에게 좋은 유인”이라고 했다. 이어 “대학원에서 뭘 배우려면 팀원 양해를 구하고 미안해 해야 했는데 확실히 세대가 바뀌는 느낌이 있다”고 덧붙였다.
직군 아우른 언론사 조직문화, 리더십 변화 고려해야
기존 조직문화 개편 없인 뉴미디어 인력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사안을 평가할 때 솔루션 내용이 아니라 누가 화자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선배가 얘기하면 맞고 후배가 얘기하면 안 되는 분위기가 실망스러웠다. 평가와 이후 처리 과정에서 ‘누구의 프로젝트’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누군가 이어받아야 할 사업도 와해되고 사후 평가로 배우려고 하지도 않는다.”(디지털전략 부서 경험이 있는 전직 기자)
“선배들은 정말 좋았고 배운 것도 많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신문사다보니 회사 차원의 동기부여나 지원, 심리적인 지지가 글 기사와 괴리가 있었다. 변했다고 하지만 여기서 계속 영상을 다루고 한 발 더 성장하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지금도 일은 많지만 똑같은 걸 답습하지 않는, 좀 더 상상하고 챌린징을 할 수 있는 느낌이 있다. 영상에 익숙한 더 어린 친구들을 저널리즘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신문사에서 일했던 전직 PD)
회사가 이들을 어떻게 끌어갈지 경영진과 중간관리자 모두의 리더십 변화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장은 “언론사 조직문화는 업무 자체는 개별적이고 독립적이지만 위계적인 절차를 거치는 이중적인 특성을 띤다. 이 갭을 과거 기자들은 당연하게 용인했다면 지금은 일일이 설명해 주지 않으면 불만으로 쌓이다 퇴사요인이 되는 달라진 분위기”라면서 “산업이 미래 비전을 보여줄 수 없다면 선배 기자들 혹은 리더들이 미래 비전, 언론의 사명감을 얘기하고 소통하려고 해야 한다. 리더들이 중간 완충지대 역할을 해줘야 할 필요성이 늘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모두가 문제와 답을 안다. 관건은 실행 여부다. 오늘도 어떤 기자가 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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