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으로 접하는 보도지침 사건, 언론의 기본 책무 기억해줬으면"

[인터뷰] 연극 '보도지침' 모티브 된 김주언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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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은 1986년 전두환 정권 당시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가 '말'지를 통해 보도지침을 폭로한 실제 사건의 판결 과정을 재구성한 법정 드라마다. 사진은 김주언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이 지난달 29일 연극 '보도지침' 책자를 들고 사진 촬영에 임한 모습.

“당연히 실려야 될 기사를 싣지 말라고 지침을 내리는 정치권과 그 지침을 따르는 언론, 이게 음모가 아니고 뭔가요.” 국가보안법상 외교상 기밀누설, 이적표현물 소지 등 위반 혐의로 재판이 열린 법정에서 김주혁 대한일보 기자는 검사에게 이렇게 반문한다. 연극 ‘보도지침’ 속 장면이다.


32살의 김주혁 기자는 김주언<사진>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김주언 이사장은 7년차 한국일보 기자이던 1986년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했다. 보도지침은 전두환 정권 시기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에서 기사 통제를 위해 거의 매일 각 언론사에 시달된 가이드라인이다. 그해 9월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서 발행한 ‘말’지 특집호 <보도지침, 권력과 언론의 음모-권력이 언론에 보내는 비밀통신문>을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연극은 보도지침 폭로 사건의 재판 현장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김주언 기자는 김주혁 기자로, ‘말’지는 월간 ‘독백’으로 각색됐다. 그는 본인의 모습을 분한 무대 위 김주혁 기자를 보고 한 인물이 과도하게 미화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김 이사장은 “연극을 만들겠다며 찾아온 제작진에게 하나만 당부한 건 기자의 모습을 영웅시하지 말아달라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거였다”며 “보도지침 폭로는 나 혼자 한 게 아니지 않나. 실제 연극에선 김주혁이 상황에 대해 여러 갈등을 하고 고뇌하는 인물로 나온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대학로 TOM 2관 열린 연극 '보도지침'의 무대. 해당 기자회견 장면은 관객들의 사진 촬영이 가능했다.


연극 속 대사는 보도지침 사건의 실제 인물들이 법정과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보도지침을 두고 정부의 ‘보도 협조 사항’이라고 주장하는 검사와 명백한 보도지침이라는 변호사 간의 논쟁 장면도 실제 법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무대 위 법정 피고석에는 기자 김주혁, ‘독백’ 편집장 김정배, 변호사 황승욱이 나온다. 실제 당시 법정에는 김주언 기자, 김태홍 민언협 사무국장, 신홍범 민언협 실행위원, 민변 소속 10여명의 변호사들이 자리했다.


“연극을 보면서 당시 한승헌 변호사의 변론내용이 떠올랐는데 그분이 ‘불을 낸 사람들을 처벌하지 않고, 불을 끄려고 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아주 이상한 재판이다’라는 말을 하셨어요. 연극 속에서도 적반하장이라는 얘기가 나오죠. 보도지침이 어떻게 지켜졌고, 얼마나 강제성이 있느냐를 확인하기 위해 각 언론사 편집·보도국장을 증인으로 요청하기도 했어요. 처음엔 판사가 증인 채택을 했지만, 이후에 안기부의 압력으로 증인 채택을 다 취소해버려 재판정에서 변호인들이 거세게 따진 일도 있었습니다.”


연극에선 보도지침이 편집국장실의 팩스로 전달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문공부 홍보조정실로부터 전화가 오면 수기로 적는 식이었다. “전화가 오면 부국장이 받아쓰고, 그 내용을 복사해 주요 부서의 부장에게 전달해 보도지침을 토대로 신문 제작이 이뤄졌습니다. 매일 온 보도지침을 모아 월별로 한부씩 철을 해놓았는데 당시 편집부에서 내근을 하면서 그걸 보게 됐고 1년 가까이 되는 자료를 복사해 보도지침을 전달하게 된거죠.”


보도지침 사건 30주년을 맞은 2016년 초연된 이 작품은 올해로 4연을 맞았다. 연극이 관객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달 28일 연극이 열린 서울 대학로 티오엠(TOM) 2관 객석은 평일 저녁임에도 관객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배우들의 절절한 연기에 관객들은 함께 울었고, 공연이 끝나고 기립박수가 이어지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관객들이 보도지침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시대를 넘어선 언론 자유에 대한 공감”이라고 봤다. “언론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니 연극을 보며 공감하는 폭이 넓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과거 독재 정권처럼 언론을 통제하고 정권의 홍보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세력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죠. 보도지침 사건을 통해 언론의 기본적인 책무를 항상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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