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코위'는 맞고 '조꼬위'는 틀리다

[글로벌 리포트 | 인도네시아] 고찬유 한국일보 자카르타특파원

고찬유 한국일보 자카르타특파원

2016년 미국 연수 시절 북남미 대륙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정리충(蟲)인지라 여행지와 경유지 목록, 이동 및 체류 시간, 비용 등 일정표를 정리할 때마다 고민에 빠졌다. ‘이 지명은 한글로 어떻게 적어야 하나.’ 그 수고가 낭비로 여겨져 결국 알파벳으로 적었다.


현지인에게 지명을 말할 때 여러 번 당혹스러웠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정갈하게 발음하면 상대는 십중팔구 못 알아들었다. 애틀랜타, 오타와 등이 그렇다. 2008년 사회를 들썩였던 ‘오륀지 논란’이 절로 떠올랐다. 그렇다고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논란 당사자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외래어 표기법과 실제 발음의 괴리를 몸소 체감한 정도다.


3년 전 자카르타 특파원 부임 이후 비슷한 고민과 경험에 부딪혔다. 낯선 지명이나 이름이 나오면 반드시 현지인에게 확인했다. 귀로 들은 발음을 한글로 표기하는 일은 늘 고역이다. 기사를 작성해야 하니 덜렁 알파벳만 쓸 수도, 외래어 표기법을 무시하고 실제 들리는 대로 적을 수도 없었다.


부임 초기 교열 기자와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한글 표기법대로 쓰면 현지 교민들이 틀렸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외래어 표기법을 따라야 합니다.” 개인 저서나 사적인 글이 아닌 공적인 기사를 써야 하는 입장에서 원칙을 존중해야 하는 건 기자의 숙명이라 받아들였다.


현실은 고민의 산물을 인정하지 않았다. 외래어 표기법을 지킨 기사에 ‘인도네시아에도 안 와 본’ ‘책상에서 외신 베낀’ ‘인도네시아어도 모르는 기자’라는 반응이 달린다. 기자의 무지를 깨우쳐 주려는 듯 친절하게 실제 발음을 적기도 한다. 몇몇 교민도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넌지시 조언한다. “파리를 빠리라고 쓰지 않잖아요”라고 답하면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있다.


인도네시아어 표기의 괴리는 된소리(ㄲ ㄸ ㅃ)처럼 들리는 인도네시아어와 된소리를 가급적 쓰지 않으려는 우리나라 외래어 표기법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영어와 다른 인도네시아의 알파벳 발음도 거론할 수 있지만 그건 인도네시아 알파벳 발음을 익히면 해결될 일이므로 여기선 언급하지 않겠다.


된소리 사랑은 동남아시아 지역 언어의 특징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국립국어원은 2004년 말 베트남어와 태국어의 된소리 표기를 인정한 바 있다. 반면 당시 말레이인도네시아어는 인정받지 못했다. 외래어 표기법 일람표의 ‘말레이인도네시아어 자모와 한글 대조표’를 보면 인도네시아어는 여전히 예사소리(ㄱ ㄷ ㅂ)와 거센소리(ㅋ ㅌ ㅍ)로만 표기하도록 돼 있다.


이를 두고 베트남, 태국은 되는데 인도네시아는 왜 안 되냐는 얘기가 여전히 나온다. 들리는 건 비슷해도 언어 구조가 달라서다. 태국어와 베트남어는 우리 말처럼 ‘ㄱ, ㅋ, ㄲ’가 서로 다른 소리라서 ‘ㅋ’ 자리에 ‘ㄲ’을 쓰면 서로 다른 뜻을 가진 말이 된다. 반면 인도네시아어는 실제 들리는 것과 달리 ‘ㄱ, ㅋ’, 즉 예사소리와 거센소리의 구분만 존재한다. 이는 한국어를 대학에서 정식으로 배운 현지인도 인정한다. 실제 발음에 가까운 것처럼 들리는 된소리 표기를 지양하는 이유는 보다 쉽고 간결한 표기를 위해서라고 국립국어원은 밝히고 있다.


최근 국내 매체의 인도네시아 관련 기사를 보면 이런 원칙을 무시한 사례가 부쩍 늘었다. ‘국가기간통신사’라 자부하는 연합뉴스의 현지 특파원이 원칙을 무시한 된소리 표기를 하자 다른 매체들이 고민 없이 받아쓴 결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다른 부서의 기사가 인도네시아어 표기 원칙을 준수하는 걸 감안하면 일관성마저 없다.


원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원칙이 깨지면 혼란이 온다. 기자도 조코위(대통령)를 ‘조꼬위’로, 프라보워(국방장관)를 ‘쁘라보워’로, 카라왕과 크망(지명)을 ‘까라왕’ ‘끄망’으로 적고 싶다. 기자만 아니라면, 기사만 아니라면 말이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편찬 때 앞서 언급한 표기법을 조언하자 책 앞면에 표기 관련 ‘일러두기’가 상세히 들어갔다. 그런 설명을 기사를 쓸 때마다 밝히기 어렵다면 원칙을 지키는 게 맞다. 이 글을 읽는 동료들만이라도 인도네시아어 표기 원칙을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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