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편집권의 독립성을 침해하거나 훼손할 수 없다. 기자는 언론의 정도나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반한 기사를 쓰도록 강요받지 않는다.” 약 23년 전 10월 기자협회보는 <서울신문 ‘편집권 독립’ 선언> 제하 기사 첫 문장에 이 같이 적었다. 서울신문 노사는 당시 7개항에 걸친 ‘편집권 독립을 위한 노사 공동선언문’에 합의했는데 여기 담긴 내용 중 일부다. 서울신문 “53년 역사상 유례 없는 일”이었다고 본보는 기록했다.
단체협약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선언문은 조직개편과 관련한 노사 협상 과정에서 나왔다. 서울신문 본부, 스포츠서울 본부로 개편하는 방식을 두고 노조는 “편집과 광고·판매의 유착 가능성이 우려된다”며 편집권 독립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 작성을 요구했다. 사측이 초반 이를 거부하며 협상이 결렬됐지만 재개된 협상에서 본부제 도입을 전제로 수용하며 합의가 성사됐다.
이에 따른 선언문은 “취재기자가 쓴 기사가 왜곡됐을 경우 데스크, 편집자, 국장단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했고,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사태가 생기면 노사는 합심해서 이에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한다”고 했다. 특히 “회사가 기자에게 영업 및 수익활동 등 본연의 업무와 관련 없는 일을 강요할 수 없다”고 적시했다.
최근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이 호반건설의 인수제안을 받아들이며 서울신문의 주인이 바뀌었다. 경영진 역시 새로 꾸려지며 또 다른 시작을 앞둔 상태지만 내외의 시선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특히 언론사의 경영권을 장악한 건설사가 향후 편집권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은 아닐지가 우려의 핵심이다.
이미 인수 과정에서 호반은 구성원들의 ‘편집인 임명 동의 투표’, ‘편집권 독립’ 조항을 거부했고 고용보장 방안도 받아들이지 않은 바 있다. 언론사 구성원이라면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오래 전 합의의 정신은 앞으로도 유효할 수 있을까. 당시 기사 말미에 담긴, 어쩌면 지금 더 유의미해진 발언에서 노조는 “기자들은 물론 사측의 노력이 있어야 선언문이 실효를 거둘 수 있다”며 “하나하나 제대로 지켜나감으로써 서울신문이 국민의 언론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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