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실종됐다고요?

[이슈 인사이드 | 기후] 신방실 KBS 재난미디어센터 기상전문기자

신방실 KBS 재난미디어센터 기상전문기자

기상전문기자라는 직업 때문일까? 사람들이 날씨 얘기를 하면 귀가 쫑긋해진다. 출근길 버스에서, 점심 먹으러 나가는 직장인들 틈에서 “왜 이렇게 추워?” 아니면 “더워?” “비가 자주 와?” “미세먼지가 심해?” 이런 대화가 자주 들린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 사이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곤 한다. 진짜 그러면 사람들이 놀라겠지?


최근에는 10월 중순 갑작스러운 한파가 찾아왔다. 요가 수업을 갔는데 매트 위에 앉은 회원들 사이에 날씨 얘기가 한창이다. 가을 옷을 살 필요가 없다, 트렌치코트를 꺼냈는데 1번 입고 세탁소에 맡기게 생겼다, 이러다 겨울 오는 거 아니냐, 지난겨울 엄청 추웠다 등등….


요가 선생님이 들어오신 뒤에도 수다는 이어졌다. 날씨 토크만으로도 1시간 수업 시간을 채울 기세였다. 선생님 대신 날씨 강의를 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여기서 간단하게 정리하는 걸로 만족해야겠다.


올가을 날씨는 참 이상했다. 아열대 열기를 품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10월 중순까지도 물러가지 않고 한반도 남쪽에 버티고 있었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장마가 끝난 뒤 찜통더위를 몰고 오는 거대한 공기 덩어리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방패’ 역할을 해준 덕분에 올해는 다행스럽게도 태풍의 영향이 적었다. 대신 10월까지도 반팔을 입어야 했다.


북극의 상황을 보면 엄청난 한기가 여름부터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지난 7월 내내 북극 상공을 도는 제트기류가 유난히 강해 찬 공기가 꽁꽁 묶여있었다. 그러다가 9월 들어 둑이 터진 것처럼 찬 공기가 밀려오기 시작했는데, 남쪽 고기압의 수비에 번번이 막히고 말았다.


그러나 18호 태풍의 통과로 갑자기 쭈그러든 북태평양 고기압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북쪽 찬 공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갑작스러운 ‘선수 교체’에 평년보다 이른 첫얼음과 서리, 눈이 관측됐고 우리의 옷차림은 반팔에서 패딩으로 계절을 건너뛰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남은 11월도 예년과 비슷하거나 낮은 기온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 올가을은 사실상 실종됐다고 볼 수 있다. 1년 중 가장 좋은 계절이 가을 아닌가. 안타깝게도 최근 기후위기로 여름 더위가 길어지면서 가을의 시작이 늦어지고 길이도 점점 짧아지는 추세다.


대신 겨울이 아예 사라질 거라는 기후학자들의 전망과 달리 겨울 한파는 점점 더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 들면서 북극의 온난화로 동아시아 겨울 몬순(계절풍)이 오히려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겨울에도 1월8일 서울의 최저기온이 18.6도까지 내려가 한강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다.


올해도 한파가 일찍 찾아온 만큼 다가오는 겨울 날씨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기상청의 겨울 전망은 11월 중·하순에 나오지만 살짝 예측을 해보자면 우리나라는 올겨울도 추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반도 겨울 추위에 영향을 주는 북극 바렌츠-카라해의 얼음이 많이 녹았기 때문이다. 겨울이 전반적으로 따뜻하더라도 12월 초겨울 한파는 대부분 강하기 때문에 이제는 겨울을 맞을 채비를 서서히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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