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매체들이 NFT 사업에 속속 진출하며 언론사들의 새 수익 창구가 될지 관심을 모은다. NFT에 대한 관심과 수요에 대응한 결과로선 유의미하지만 보유 ‘아카이브’를 디지털화 해 판매하는 방식의 지속가능성을 두고선 회의적인 평이 다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NFT 수익모델 개척에 나선 매체들의 시도에 이목이 쏠린다.
영남일보는 최근 창간 76주년을 맞아 자체 NFT 플랫폼 ‘캔버스’를 통해 기획전을 열고 작품 판매에 나섰다. 백범 김구 선생 휘호(개당 500만원, 9개), 창간호(개당 45만원, 76개)가 근 하루 만에 완판됐고, 유승민·이재명 등 대선후보와 관련한 칼럼 2편 역시 경쟁적으로 판매됐다. 지난 8월 한국경제는 NFT 상품 ‘이건희의 발자취’를 선보였다. 별세 다음날 특집지면, 희귀 인터뷰 자료가 담긴 상품은 경매 방식을 거쳐 시작가 1만 메타디움의 2배 가량인 2만790메타디움(약 300만원)에 팔렸다. 지난 7월 씨네21이 창간호에 유명 배우 사인 등을 더해 NFT 사업에 진출했고, MBC도 창사 60주년을 맞아 NFT 판매 플랫폼을 오픈, ‘평양 생방송 현장’, ‘무한도전 특집로고’ 등 판매에 나섰다. 디지털 콘텐츠에 고유한 인식값을 부여, 개인이 희소성을 갖는 자산으로 이미지나 영상을 보유케 한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가 각광받으며 언론에서도 대응에 나선 모양새다.
아직까진 나쁘지 않은 성과지만 단순히 언론사 ‘아카이브’를 재활용하는, 현재 가장 흔한 방법으론 지속가능하기 어렵다는 평이 나온다. 투자 혹은 재테크 수단으로써 성격이 강한 현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뉴스 콘텐츠의 공공재적 속성 역시 NFT 상품으로선 불리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김위근 퍼블리시 최고연구책임자는 “NFT 상품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독특함이 있어야 하는데 뉴스 콘텐츠가 뭐가 있을까. 정말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단독이나 특종, 사진은 다른 매체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투자 대상으로서 희소성은 없다는 의미”라고 했다. 박근모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도 “작가들과 얘기해보면 무작정 발행한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스토리텔링이 있고 여기 이용자가 공감했을 때 팔린다고 한다. 대세는 예술작품인데 언론사 아카이브를 내놓는 건 너무 쉽게 본 것”이라며 “플랫폼도 국내외 모두 선점된 상태라 언론사가 뛰어들기 쉽지 않다”고 했다.
이 같은 한계를 절감한 일부 매체는 ‘아카이브 디지털화’ 이상의 시도를 이미 감행해왔다. 지난 8월 매경이코노미는 지면 코너 ‘축하합니다’에 출산, 결혼, 승진, 대학입학 등 독자의 사연을 담고 NFT로 변환해 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과거 기사가 아닌 앞으로 나올 지면에 대한 게재권을 판매하는 형태다. 첫 경매 당시 20명이 응찰, 시작가 375메타디움이 2500메타디움(약 38만원)까지 오른 바 있다. 아카이브 판매로 주목을 끈 영남일보가 지역 대학생, 신진 작가를 위한 갤러리로서 플랫폼 성격을 부여한 것 역시 유념할 만하다.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는 “보유 아카이브 활용 수준에서 진일보한 시도를 하고자 독자참여형 비즈니스모델을 세웠다. 빈 지면, 시간대에 없던 콘텐츠를 만들어 NFT로 변환하는 사업은 원가가 안 들고 무조건 순익이라 매력적”이라며 “미확정이지만 MBN 시청률 사각지대 시간대에 독자 영상편지를 담아 NFT화 하는 등 계속 붙일 수 있는 게 많은 방식”이라고 했다. 이어 “경연대회 초기 참여자 모두를 인터뷰하고 NFT화 동의를 받아 추후 한류스타가 될 인물의 모습을 먼저 담는 방식을 감안할 수 있는데 언론사가 NFT 사업 시 겪는 초상권, 수익배분 문제에서 자유로운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겨레 자회사로 블록체인 전문매체 코인데스크코리아를 운영하는 22세기미디어는 아예 NFT 에이전시로 사업 방향을 잡은 경우다. 지난 5월 이세돌 전 프로바둑기사가 인공지능 알파고에 승리한 대국 영상, ‘신의 한수’로 평가받는 백 78수 기보 등을 NFT로 제작해 약 2억5000만원에 판매한 회사는 김태권 만화가와 함께 NFT아트 기획사 겸 매체인 ‘디지털리유어스’를 공동 설립했다. NFT 아트 담론을 만드는 매체이자 ‘예술품’ 에이전시로서 역할 한다. 최근 이종범 작가와 협업해 네이버웹툰 ‘닥터프로스트’의 명장면을 NFT로 발행하기도 했다.
유신재 22세기미디어(겸 디지털리유어스) 대표는 “타임지는 지난달 작가 40명의 작품을 판매하는 타임피스(TimePieces) NFT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카이브가 아니라 브랜드 파워와 신뢰를 바탕으로 작품을 판매하는 비즈니스로 바꾼 점은 상징적”이라며 “이세돌 기획 성공 뒤 NFT 기획사로 방향을 잡았다. NFT 아트가 예술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선 기성 예술시장 같은 생태계가 필요한데 현재는 갤러리 역할만 있고 비평이 없어 이를 개척하려한다”고 했다.
언론사들의 NFT 진출이 이벤트 성격과 사업성 판단을 겸한 실험 단계였던 만큼 본 게임은 막 시작됐다. MBC는 시범판매 기간을 지나 이달 말부터 본격적으로 전략 콘텐츠 판매를 시작하고, 매일경제는 사내 블록체인 TF를 꾸려 전사적인 대응에 나섰다. 최명환 씨네21 콘텐츠팀장은 “일단은 주기적으로 상품을 내 시장에 인식되도록 하고 비정기적으로 스페셜한 상품을 내는 틀을 유지할 생각”이라며 “아카이브 위주로 가는 걸 벗어나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취재단계부터 여러 부서가 협업해 미래에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상품을 고민해보려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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