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부와 지자체, 공기업 등은 정책 홍보나 캠페인을 목적으로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 언론매체에 광고를 낸다. 이런 목적으로 쓰인 정부광고비는 지난해 1조890억원에 달한다. 정부광고는 재원이 국민 세금이라 매체 선정과 집행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3000곳이 넘는 정부기관이 임의로 집행하다 보니 유력 언론사에 정부광고가 몰리는 경향을 보이거나 정부광고를 매개로 한 거래와 후원이 일상으로 이뤄진다.
인구 100만의 경기도 한 지자체는 지난해 언론홍보비로 18억원을 썼다. 138개 매체에 홍보비가 집행됐는데, 어떤 기준으로 얼마씩 배정됐는지 전혀 모른다. 명확한 기준이 없는 탓에 ‘지자체장 맘대로’ 홍보비가 쓰이는 구조다. 지난 13일 전국언론노조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이런 사례가 나왔다. “한 지자체에 가니 발행부수 5만부인 신문과 5000부인 신문의 뒷면 전면광고 가격이 같더라. 5000부 신문사 발행인과 지자체장이 동창이기 때문이었다.” 도단위 광역자치단체에서 이럴진대 시군구는 차고 넘칠 것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돕는다는 목적은 온데간데없고, 정부광고 기저에는 정부기관과 언론사 간 ‘은밀한 거래’가 작동하고 있다. 정부기관은 광고를 활용해 언론사를 적절히 관리한다. 협조적인 언론사는 정부광고를 많이 배정하고, 비판과 견제를 하는 언론사는 광고를 배제하거나 축소한다. 정부광고 의존도가 높은 언론사는 정부시책에 협조하고 정부기관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 여의치 않으면 악의적인 보도로 협박한다. 정부광고로 연명하는 사이비 언론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이유다. 1조원의 정부광고가 ‘나쁜 저널리즘’의 토양이 된 셈이다.
이 지경에 이른 이유는 정부광고 집행기준이 명확하게 마련되지 않은 탓이 크다. 일례로 전국 17개 시도와 288개 시군구 중에서 조례를 정해 광고비를 집행하는 곳은 17곳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때그때 자의적으로 광고비를 집행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특히 정부광고 관련 세부내역은 베일에 가려 있다. 지난해 6월 언론노조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정부광고를 대행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정부광고 집행내역 정보공개를 신청했으나 언론재단은 ‘영업비밀’이라며 세부내역 공개를 거부해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정부광고비가 어떤 매체에 어떻게, 얼마나 쓰이는지가 왜 영업비밀인지 의문이다.
정부광고를 둘러싼 여러 논란 속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합리적 정부광고 기준을 만들겠다며 의견 수렴에 나섰다. 문체부는 지난 7월 ‘부수 부풀리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자 ABC 부수공사의 정책적 활용을 중단하고 대체지표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번에 세부안을 내놨다. 신문과 잡지 등 인쇄매체의 경우 전국 5만명을 대상으로 한 열독률(지난 한 주간 열람한 신문이 무엇인지) 조사와 함께 편집위원회나 독자위원회 설치·운영 여부 등 사회적 책임을 핵심지표로 넣고 참고지표로 직원 4대 보험 가입 및 완납 여부, 세금 체납 여부, 포털 제휴 여부 등을 제시했다.
편집·독자위원회 설치,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우선지원대상사 등을 핵심지표에 포함한 것은 긍정적이나 몇몇 지표의 경우 보완이 필요하다. 일부 유력 신문사의 경우 열독률 조사에 대비해 무가지 10만부를 뿌리는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대체지표를 정교하게 만들되 무엇보다 정부광고의 투명한 집행을 위한 제도적 장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자의적으로 광고비를 집행하면서 사후감독 절차도 없는 이런 구조에서 ABC 부수공사를 대체하는 지표는 언제든 무력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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