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방송시장은 코로나19의 확산과 더불어 넷플릭스 위주로 급속하게 재편이 끝났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은 국내 방송산업의 최강자가 넷플릭스로 바뀌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넷플릭스가 국내 시청자들의 시선을 끈 이유는 간단하다. 표현 수위나 분량의 제약도 없고, 드라마의 완성도를 해치는 PPL로부터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방송심의의 무풍지대 넷플릭스는 낡은 국내 방송법 체계 속에서 시름 하던 드라마의 창작자와 제작자에게 작품의 완성도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유통 창구를 제공했다.
넷플릭스의 등장 이후 기존의 지상파 중심 국내 방송 프로그램 유통 및 제작 구조는 완전히 무너졌다. 방송산업의 지형은 급변했고, 이에 따라 시청자의 미디어 이용행태도 변화했다. 하지만 낡은 방송법 체계는 2000년 통합방송법 체계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방송법의 대대적인 개정이 이뤄지지 못해 다양한 문제점이 양산되고 있다. 케이블TV는 IPTV 사업자에게 주요 MSO사업자들이 전부 인수되면서 사업 자체가 존폐의 위기다. 국내 방송시장은 방송법이 아니라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의 적용을 받는 IPTV에게 완전하게 장악당한 뒤, 이제는 정보통신사업법의 적용을 받는 OTT서비스로 주도권이 넘어갔다.
방송산업의 핵심 법체계는 방송법이지만 방송법의 적용 대상이 아닌 사업자들이 방송산업의 주류로 등장하면서 현행 방송법 체계로는 더 이상 규제가 불가능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최근 여야 합의로 언론미디어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 특별위원회 설치가 이뤄졌다. 여기서는 여야 간에 극명한 입장차를 보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의와 더불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까지 함께 논의할 예정이다. 국회가 설치하기로 한 이번 언론특위가 공염불로 끝날지 아니면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포함하여 방송법 체계의 대대적인 개편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김대중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매번 새롭게 정부가 출범하면 미디어 분야의 정부조직 개편과 공영방송 사장 임명은 항상 첨예한 갈등의 포인트였다. 따라서 언론특위에서는 단순히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그치지 말고 OTT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통합방송법 체계를 마련하고 나아가 미디어 분야 정부 조직 개편까지 논의하여 차기 정부에 제안할 수 있는 여야 간의 합의안을 도출해야 한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의 주요 방향은 이미 국회를 중심으로 충분하게 논의가 되어 있다.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에 대한 투명성과 절차적 민주성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하는 부분만 합의가 된다면 빠르게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소위 공영방송 이사 및 사장 추천위원회를 만들어 정치권이 주도하여 추천하고 임명하는 방식에서 탈피하고,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과정에서 다양한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현재 정필모 의원 주도로 상정되어 있다. 해당 법안의 내용을 토대로 여야 간에 절충된 안을 만들 수만 있다면 언론특위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된 부분은 가시적인 성과물이 기대된다.
문제는 대선을 앞두고 국회에서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관심이 높지만 국회를 한 걸음만 벗어나면 정작 모든 이들의 관심은 방송산업의 변화에 상응하는 대대적인 방송 관련 정부조직 개편이나 방송법 체계의 개편에 쏠려 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은 우리의 드라마도 글로벌한 경쟁력을 충분히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넷플릭스가 국내 방송 유통시장을 넘어 제작 시장까지 모두 석권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방송법 체계는 마치 온라인 유통 중심으로 시장 구조가 바뀐 유통산업에서 오프라인 사업자들을 규제하는 법체계만으로 유통산업 전체를 규제하려는 상황과 흡사하다. 방송법 체계 내에 들어와 있는 지상파와 케이블TV, 위성방송과 같은 플랫폼은 오프라인 유통업체처럼 전부 사양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이 유튜브의 시사채널들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에 방송사의 뉴스 채널만을 상정한 방송법 규제 체계를 지속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다. 중앙일간지 신문과 지상파와 종편 및 보도전문채널 등 뉴스가 가능한 방송 채널을 핵심적인 미디어로 치부하면서 미디어 정책과 법체계를 고수하려는 관행부터 벗어나야 한다. 방송 플랫폼 중심으로 규제체계가 만들어져 제정된 2000년 방송법 체제를 이제는 과감하게 손 봐야 한다. 언론특위가 새로운 방송법 체계를 만드는 시금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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