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세대’, 즉 ‘Generation rent’가 등장한 지 오래다. 소득수준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주거비 부담에 시달리고, 민간임대차 시장에서 형성된 주택 가격을 감당할 수 없어 주택을 구매하지 못하는 청년층. 이들은 보통의 노동소득으로는 구매 불가능한 주택 가격을 불안하게 지켜보며 부랴부랴 사회에 진입해 자립 기반을 다지기 위해 노력한다. 교육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고, 일 경험을 위해 불안정 노동과 정체된 임금 수준을 홀로 감당해낸다. 누군가는 학업 중에, 누군가는 구직과 취업 전후로 첫 독립을 시작하며 세입자로의 삶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보증금, 월 임차료, 심지어 관리비까지 부담하느라 다수는 빚을 진다. 한국은 특히 월세의 몇백 배에 달하는 보증금을 세입자가 부담해야 하는 민간임대차 시장의 특징을 고수하고 있다.
자산을 중심으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사회인만큼 모든 청년이 민달팽이세대의 주요 특징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청년이 독립할 때 자신의 부모가 과거부터 보유해온 자산을 직·간접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며, 이 과정에서 세대 내 불평등이 도드라진다. 소위 ‘Bank of Mom&Dad’를 이용할 수 있는 청년은 그 은행의 최우선 고객이 되어 무이자로 돈을 빌리거나, 주거비를 지원받거나, 대출 시 보증을 받거나, 때로는 주택을 증여 및 상속 받는다.
지금도 집값은 오르고 있고, 집으로 투기해왔던 자들의 잔치가 연이어지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민달팽이세대라 정의하는 청년은 이런 흐름이 ‘불안’하다. 반면 ‘Bank of Mom&Dad’를 효과적으로 누릴 수 있는 청년은 불안하지만은 않다. 이들은 자산불평등을 더 심화시키기는 흐름에 비자발적으로라도 몸을 맡기며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자신의 여건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되레 부모가 지불하게 될 세금을 함께 걱정한다. 나아가 과거 세대의 투자·투기 경험을 자산 삼아 이를 가업으로 여기기 시작하는 새로운 흐름도 나타난다. 실제로 일부 구성원들은 혈연을 통해 세습되는 자산불평등을 한국 사회의 기본 설정값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노력하면 번듯한 집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어느새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도 최근이다. 가끔 청년의 주거권 침해 현장에 대응한 민달팽이유니온의 기사에 무플방지 차원에서 등장하는 정도로만 맥을 이어가고 있다.
고속성장 시대를 살았던 과거 세대 중 누군가는 저금리 대출로 영끌하여 마련한 주택에 직접 거주하거나 임대를 주거나 사고파는 것을 반복하며 투기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 그 시절 그 사람들을 ‘영끌세대’라 부르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보다 그때가 더 영끌세대답지 않은가? 집값 상승과 함께 보증금도 기하급수적으로 오르고, 월세도 오르고, 심지어 관리비까지 오른 사회에서 홀로서기 과정을 겪는 청년은 왜 영끌세대로 통칭되는 것인지 그 자체가 의문이다. 반지하의 보증금이 수천만원에 달하는 저층주거지가 점차 늘고, 월세 50만원을 내놓고도 위반건축물 같은 공간에 살아야 하고, 노후고시원의 관리비가 15만원까지 오르는 것을 눈 뜨고 봐야 하는 청년들은 당황스럽다. 자산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구조에 눈 가리고 아웅하면서 대단히 노력했거나 대단히 운이 좋았던 청년들의 영끌에만 주목하는 세태에 할 말을 잃는 요즘이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