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수상자에 두 언론인이 이름을 올렸다. 독재 정권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수호했다는 게 선정 이유다. 언론인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86년 만이다. 그런데 두 언론인 모두 공영방송과는 거리가 멀다. 한 사람은 러시아 유일의 반정부 매체 편집장, 또 한 사람은 필리핀의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설립자다. 세계적인 언론의 위기 속에서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지만 공영방송에게는 위기의 조짐 중 하나로 들린다.
‘대한민국 신뢰의 기준, 대표 방송. 가장 영향력 있는 공영미디어.’ 공영방송 KBS가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는 문구다. KBS의 이런 주장이 곧 시청자들의 요구다. 재난 소식을 가장 신속하게, 복잡한 세상사를 정확하고 공정하게 전달해달라는 단순한 바람. 그 대가로 대부분의 국민들은 매달 2500원을 납부한다. 그런 KBS 사장 선임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후보자 15명의 지원서가 공개됐다.
쟁점은 단연 ‘시민참여단’이다. 이사회 서류 평가에서 5명으로 압축된 후보 중 1차 면접을 통과한 3명은 23일 정책발표회에서 200명 안팎의 시민참여단 평가를 받는다. KBS 구성원들의 의견도 반영된다. 무작위로 선정된 직원들이 후보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도록 하고 그 내용을 정책발표회나 최종 면접 심사 때 활용한다. 그동안 KBS 사장 선임이 정치권에 영향을 받는다는 문제제기로 지난 사장 선임부터 도입된 제도다. 이른바 ‘낙하산 사장’을 막을 수 있는 방안으로도 꼽힌다. 어떤 경우든 최종 후보 1명을 결정하는 과정에 시청자들의 투표가 반영된다는 점에서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물론 한계도 있다. 특히 시민 평가가 40%밖에 되지 않는 점은 꾸준히 지적돼온 문제다. 시민참여단의 결정이 반영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보다 앞서 이사회가 5인을 추천하는 과정에서 이미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맹점도 있다. 이사회 구성은 여전히 정치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심을 받고 있어서다. 물론 시민참여단 평가를 100% 반영한다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자칫 공영방송 사장 선임이 인기투표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하고 내공을 쌓아오며 그 분야에서 인정 받아온 인물보다 눈에 띄는 발언 등으로 비교적 대중에 많이 노출된 사람에게 유리할 수 있다.
모범 답안은 여전히 없다. BBC나 NHK 등과 비교하기엔 나라별 정치적 역사적 환경이 너무 다르다. 그렇다고 그들이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공영방송이라 불리는 MBC가 지난해 사장 선임 과정에서 시민평가단을 도입하려 했지만 코로나 여파로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왜 KBS만 못하냐 꾸짖기만 하기도 어렵다. 결국 공영방송 사장 선임 구조는 청와대와 국회, 언론계와 국민의 공감대로 만들어야 나가야 할 공동의 숙제인 것이다.
그렇다고 KBS 구성원들이 수신료로 거액의 연차 보상금을 받으며 홀로 안빈낙도해도 된다는 게 아니다. “당신이 주신 봄, 꽃 피우겠습니다.” 지난 2018년 양승동 사장이 취임식 때 배경에 내걸었던 슬로건이다. 시청자들에 의해 뽑힌 사장이란 걸 강조하고자 했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후로 3년 반이 흘렀다. 양승동 사장과 과거 KBS 구성원들에게 묻는다. 시청자들이 준 봄에 과연 꽃은 피웠는가. 누가 될지 모를 차기 사장과 미래 KBS 구성원들에게 요구한다. KBS만의 모범 답안을 만들어 다른 언론에게도 모범이 되고, 언젠간 시청자들이 준 봄에도 꽃을 피워달라고. 공영방송은 언론의 마지막 보루라는 연대의 마음으로 전하는 마지막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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