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FC불나방의 감독인 이천수와 FC국대패밀리의 수비수 심하은은 부부다. FC불나방과 FC국대패밀리의 결승전 당일, 이천수는 아내 심하은에게 “몸은 괜찮아?”라고 걱정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누나들(선수들)에게 그 얘기 했어. 공격은 심하은 쪽으로”라고. 심하은은 킥은 빼어나지만, 발이 느리고 몸싸움을 거의 못한다. 또다른 수비수 국대 출신 박승희는 빠르고 공에 대한 집착력이 대단하다. 아내는 남편을 향해 “못 됐다”라고 하지만, 어떤 감독이라도 그런 전략을 짤 것이다. 이천수는 평생을 승부사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라운드에서는 ‘승리’가 최고의 가치라는 게 뼛속 깊이 인이 박여 있다. 어떤 것도 개의치 않도록 몸과 마음이 프로그래밍화 되어 있는 것이다. 만일 아내를 생각해 심하은 쪽을 피하고 싶다면, 감독을 그만둬야 한다.
기자 또는 공적 공간에서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이런 상황이 왕왕 생긴다. 그래서 자신의 일이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될 때가 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 때는 그 상처가 더 클 수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지난 2019년 9월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조국 장관과 개인 친분이 있다는 전 교수는 “글을 쓰는 일은 이별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칼럼을 시작했다. 그리고 조국 장관이 사퇴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나열한 뒤, “이렇게 나는 오늘도 이별하고 있다. 그게 업이다”라며 글을 맺는다.
미디어오늘은 지난달 28일, ‘화천대유’ 의혹에 대해, 자사 출신이 연루된 일부 매체는 보도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머니투데이와 MBC를 말한다. 특히 화천대유 최대주주인 김만배 전 법조팀장이 있었던 머니투데이는 모든 신문이 1면 톱을 쓸 때, 사회 23면 기사 말미에 실었다고 미디어오늘은 보도했다. 언론이 특정 기사에 대해 얼마만큼의 비중을 두느냐는 해당 언론사의 편집권에 속하기는 한다. 머니투데이 편집국장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최선을 다해 보도하는 게 원칙이지만 타사 만큼 보도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면, 부담스럽고 인지상정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어떤 언론도 이런 상황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나이가 들면서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혈연, 지연, 학연, 근무연은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어떤 어머니가 세상에서 잘못을 저지르고 품에 온 아들에게 공명과 공정 잣대를 들이대겠는가. 내가 잘못했더라도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나 선배가 있다는 건 또 얼마나 고맙고 든든한 일인가.
그러나 이는 사적 영역이다. 언론이라는 공적 영역에서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고, ‘좋아하는 형’을 두기도 힘들다. 아울러 ‘연대 책임’을 질 필요까진 없다 하더라도, 대장동 특혜 의혹 한복판에 언론인이 있다는 건 언론인 모두가 자신을 한 번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 같다.
빗나가는 이야기. 기자는 글로 사람을 벤다. 베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전성인 교수는 조국 장관을 비판하면서, 과할 정도로 자신의 심사를 표현했다. 마음에 부담이 큰 것이다. 그 정도의 인지상정도 없다면, 그는 로봇이다. 그런 사람과는 멀리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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