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중략)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영화에 관심 없는 사람일지라도 아마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 대사.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 분)가 읊은 말이다. 벌써 개봉한 지 6년이 다 돼 가는 이 영화가 문득 떠오른 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노골적으로 탐욕을 채우는 이강희가 누군가를 연상시켜서다. 지나친 과장, 영화적 상상력에 불과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던 이강희는 오히려 영화보다 더 극적으로 현실에 나타났다.
최근 언론엔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 관련 특혜 의혹이 대서특필되고 있다. 그리고 이 기사들에 항상 따라다니는 이름이 있으니, 바로 김만배 <사진> 전 머니투데이 부국장이다. 지금까지의 보도를 보면 김 전 부국장은 이 사업에 조력한 수준이 아니라 한 몸통이 되어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화천대유와 천화동인 1호를 실소유하면서 대장동 사업 설계 관련자들에 각종 청탁을 한 의혹을 받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로비를 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도 조만간 김 전 부국장을 소환해 각종 청탁 여부와 용처가 소명되지 않은 자금 흐름 등을 캐물을 것으로 보인다.
언론계는 ‘충격적’이라는 반응이다. 그와 알고 지냈든 알고 지내지 않았든 직전까지 현직 기자였던 인물이, 대선 주자까지 거론되는 굵직한 의혹에 연루된 데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지만 지금까지 나온 의혹만으로도 기자로선 굉장히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본인이 아무리 부인할지라도 20년 가까이 법조기자로 일하며 알게 된 인맥을, 개인적 이익을 위해 이용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어서다. ‘취재원과는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하고 (중략)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 금전적 또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언론윤리헌장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가장 고통 받는 건 그와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후배 기자들이다. 머니투데이에서 김 전 부국장과 함께 일했던 배모 전 법조팀장까지 천화동인 7호 주주로, 거액의 배당금을 받았다는 뉴스가 나오며 머니투데이 기자들은 타사 기자들의 연락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대장동 의혹이 터진 후, 보름 가까이 김 전 부국장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던 머니투데이의 보도 행태에 대신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던 것도 일선 기자들이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머니투데이 게시판엔 “회사이름 계속 오르는데 일선 기자들은 참담합니다.” “이 정도면 오너리스크” “제대로 보도하고 1년 동안 씹히기, 얼굴에 철판 깔고 10년 동안 씹히기, 무엇을 선택해야 합니까”와 같은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핵심 당사자들은 문제가 불거지니 쉽게 기자직을 버렸고, 머니투데이는 회사의 명예가 심대하게 실추됐건만 별도의 진상 조사나 징계 없이 바로 사표를 수리했다. 개인의 일탈이라면서, 이들의 행위에 침묵하며 머니투데이 경영진이 연관된 것은 아닌지 의심을 쌓게 만들었다. “우린 끝까지 질기게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이강희의 대사가 이 대목에서 다시 떠오르는 건 그저 우연일까. 내부 규정 점검,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은 당연하거니와 대표가 직접 나서 구성원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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