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개정 목적 곱씹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나서야"

[국회 언론특위에 바란다] ①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여야가 지난달 29일 국회에 언론·미디어 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언론·미디어 제도개선 전반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3개월의 활동 시한, 대선 일정 등을 감안하면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언론중재법, 신문법, 방송법, 정보통신망법 등 언론·미디어 관련 현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시작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기자협회보는 언론특위가 언론시민사회, 학계 등과 소통하면서 언론개혁 현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공론의 장이 되길 기대하며 전문가 릴레이 기고를 4차례에 걸쳐 싣는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언론중재법 관련 회동을 마치고 합의문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 도입. 제21대 국회 개원 후 민주당이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언론미디어 의제다. 다수의 법안이 나왔고 세부 내용은 자주 변했다. 과장해 말하자면, 자고 일어나면 내용이 바뀌어 있었다. 찬성 측의 열정만큼이나 법안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2021년 8월 임시국회 통과를 목표로 민주당이 내놓은 통합안은 야당, 언론계, 시민사회, 국제사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이제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언론미디어 제도 개선 특위 구성에 합의한 상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언론미디어 제도 전반을 논의할 특위를 구성해 숙의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검토와 비판은 기존 논의로 대신하고, 향후 관련 논의에서 곱씹어 볼 생각거리를 짚고자 한다. 우선, 입법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진정 무엇인지 재검토하고 개정안이 그러한 목적을 달성할 최선의 방안인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민사상 손해배상은 크게 1)피해 자체에 대한 보상인 전보적(compensatory) 손배와 2)응징과 억지기능을 가지는 징벌적(punitive) 손배로 나뉜다. 그간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추진해 온 측은 손해배상액을 높임으로써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를 실효성 있게 구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 10년간 언론 관련 민사 판결에서 법원이 가장 빈번하게 선고한 손배액 평균이 565만원이라는 통계치가 보여주듯, 위자료 액수가 너무 낮게 책정되어 왔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손해액의 5배에 달하는 금액을 배상토록 하는 ‘배액배상제’를 통해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취지이며, 따라서 징벌적 손배제가 아니라 배액배상제로 불러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손해액을 책정한 후 고의나 중과실에 의한 보도인 경우 5배까지 배상토록 하는 방식이므로, 전보적 손해액을 넘어 증액된 배상액은 징벌적 손배에 해당할 수밖에 없다.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실효성 있는 피해 구제 방안 마련이 진정한 목적이라면, 손해액을 정한 후 그것의 5배까지 물도록 하는 새로운 입법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인격권 침해에 대한 적정 위자료 산정 기준을 확립하고 어떻게 실무에 적용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간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운용해 온 ‘손해배상액 산정가감표 2.0’의 기준금액을 높이는 것도 한 방안일 수 있다. 2017년에 대법원 위자료 연구반이 내놓은 ‘불법행위 유형별 적정 위자료 산정방안’을 활용해도 된다.


불법성이 큰 언론보도를 응징하고 억지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즉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려면 형법상 명예훼손죄 폐지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 이미 형법으로 명예훼손행위를 벌하고 있는데 민사상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는 것은 이중처벌의 문제를 발생시키고 과잉규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핵심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최소한이어야 한다는 헌법상 원칙을 고려할 때 용인되기 어렵다. 특히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폐지되어야 한다. 유엔은 이미 여러 차례 한국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미국은 명예훼손을 형법으로 처벌하지 않으며 민사상으로도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는 공익성 여부와 관계없이 명예훼손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게다가 언론사가 진실을 입증해야 면책되는 것이 아니라, 원고가 허위성을 입증해야 한다). 대신 공적 관심사가 아닌 사생활의 비밀을 누설한 경우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묻고 있다. 이러한 차이를 무시한 채 미국에서도 징벌적 손배제를 운용하고 있으니 우리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할 일이 아니다. 올해 초 헌법재판소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규정한 형법 제307조의 제1항을 합헌으로 결정했지만 재판관 5:4 의견으로 양측 입장이 팽팽했다. 5인의 재판관이 합헌으로 판단한 근거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아 민사적 구제방법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이나 위하효과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민사상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면 사실적시명예훼손죄를 합헌으로 볼 근거는 더 약해진다는 얘기다.


전략적 봉쇄소송(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SLAPP)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SLAPP은 공적 사안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이를 겁주기 위해 승소 가능성이 희박한 무의미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입막음용 소송이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원이 SLAPP으로 판단할 경우 조기 소각하(dismissal)를 가능하게 하는 반(反)전략적봉쇄소송법(Anti-SLAPP법)을 운용하고 있다(2021년 6월 기준, 총 31개의 주와 워싱턴 D.C.에 Anti-SLAPP법 존재). 우리 민사소송의 절차와 실무가 미국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SLAPP을 방지하기 위한 입법적 고려가 함께 진행되어야만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라는 표현의 자유의 중요한 가치에 대한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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