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사람과 사람을 만나고, 사람들의 삶을 어깨너머로 들여다보고 살펴보는 직업이죠. 언론인으로 한평생 살아왔는데, 회한이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며 모아놓은 파일을 정리해서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1977년 MBC에 입사해 보도국장과 광주MBC 사장, JTV전주방송 사장을 지낸 김택곤씨가 최근 책 <미국 비밀문서로 읽는 한국 현대사 1945-1950>를 펴냈다. 그는 지난 24일 전화 인터뷰에서 “해방과 미군정, 남북분단과 정부 수립,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에 숨어 있는 역사적 진실을 찾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 책의 줄기는 미국 정부의 해제된 비밀문서들이다. 그는 80년대 중·후반 미국의 소리(VOA) 기자, 1996년 MBC 워싱턴특파원으로 활동하던 기간을 포함해 20여년을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수장돼 있는 비밀문서 채집에 매달려 4000건이 넘는 자료를 모았다. 그 가운데 300여 건의 문서들 속에 숨겨진 한국 현대사의 파편들을 추려내 이 책에 담았다.
김씨가 주목한 건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이겨져 죽거나 가까스로 살아남은 수많은 들꽃들이었다.” 그는 누렇게 빛바랜 비밀문서들에서 1945~1950년의 역사적 격동기에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이 땅의 젊은이들을 마주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버마에 끌려간 17세 소녀 김연자의 이야기로 시작한 이 책을 한국전쟁에 참전한 한국계 이민 2세 미군 병사 에녹 리 일병의 수난기로 끝맺은 이유다.
자료 정리에 2년, 집필까지 1년 4개월이 걸렸다. 그는 “문서를 들추며, 문서와 문서들 사이에 놓인 상관관계를 잇는 작업이 간단치 않았다”면서 “정치적 사건이나 정치 지도자들에 관한 문서보다 탈영병 수사기록, 의용병 일기장, 미군이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에서 노획한 수백 통의 편지들에 더 눈길이 갔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책 머리말에 이렇게 적었다. “역사의 파편들이 분진이 되어 흩어지기 전에 우리 기억에서 사라져 야사가 되고 다시 달빛에 묻혀 전설이 되기 전에, 미이라 같은 서류 속 인물들을 만나 생생한 증언을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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