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8일, 작센안할트주 총리는 당일 주의회에서 처리 예정이었던 ‘제1차 개정 미디어주간협약’ 안건을 총리권한으로 상정 취소했다. 이 법안은 독일의 방송수신료에 해당하는 방송분담금을 17.50유로에서 18.36유로로 인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방송분담금 인상안이 포함된 ‘주간협약’은 연방 16개 주 전체의 주의회 결의 및 총리승인이 수반되어야 하는 특수성을 지닌 법이었기에, 작센안할트주 총리의 결정으로 인해 이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고, 방송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
방송분담금을 책정하는 독립기관인 KEF가 공영방송사의 재정평가 후 필요재정 확보를 위해 인상안을 처음 제시했을 때부터 작센안할트주 총리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2020년 4월 합의될 예정이었던 결의를 지연시켰고, 6월엔 서명으로 방송분담금 인상 결정권한을 포기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자신의 결정권한 포기서명을 일방적으로 철회하고, 최종적으로 주의회 안건 상정 취소라는 강수를 두게 된다. 방송분담금 인상을 기대하던 15개 주 정부와 공영방송사, KEF 등은 그의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고, 12월 중순에는 공영방송사들이 작센안할트주 총리를 ‘기본법에 보장된 방송자유 훼손’을 근거로 헌법소원을 제기하게 된다.
헌법소원에 따른 연방헌재의 판결은 2021년 8월5일에 발표되었다. 결론은 원고 승소다. 판결의 요지는 기본법에 보장된 방송 자유로써 공영방송사들은 재정조달에 관한 기본권을 갖는 바, 주정부들이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방헌재의 판결문엔 판결 근거와 함께 작센안할트주 총리가 방송분담금 인상을 반대하면서 내세웠던 주장들이 가진 오류에 대해서 주요하게 지적하고 있다.
작센안할트주 주총리는 공영방송사에서 동독지역을 소외시킨다며 방송분담금 인상보다 이를 선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관련해 연방헌재는 공영방송사의 운영, 방송분담금 인상의 사안이 미디어정책과 별개로 다뤄져야 한다는 판례법을 근거로 이 주장을 일축했다. 공영방송사는 독일의 미디어법에 지정된 기능적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내용과 형식을 자체적으로 결정해야 하는데, 작센안할트주 주총리의 주장은 입법자가 공영방송 운영방식에 개입하는 사안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공영방송사의 운영이 방만하여 방송분담금 인상이 야기되었다는 비판도 했었다. 하지만 연방헌재는 현재 독일방송분담금 결정 체계는 ‘공영방송사→KEF→주정부’의 순서로 절차적인 검증을 거치기에 공영방송의 방만한 운영을 위해 방송분담금이 지급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만약 공영방송사가 방만한 운영이나 공법에 근거한 기능적 임무 외의 사업을 채택하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KEF가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가 존재하고, 방송분담금 최종승인 권한을 가진 주정부들의 감시도 수반되기에 충분한 감독장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작센안할트주 총리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방송분담금 인상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연방헌재는 방송분담금 인상안은 적법한 절차를 거친 계산과 산정을 통해 국가경제상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결정된 것임을 확인시켰다. 작센안할트주 주총리의 주장은 단순추측으로 제시되었기에 공법에 명시된 ‘거부를 위한 정당한 근거 제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이번 사건은 공영방송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에서 왕왕 찾아볼 수 있는 문제였다. 독일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역사적으로 정립해온 공영방송의 역할, 정책과 공영방송 운영의 구별, 방송분담금의 정치적 해석 불가 원칙, 방송분담금 책정과정에서의 기관 독립성 등을 다룬 판례법과 그를 근거로 한 구조 개편이 전제되었던 상황이었기에 이번 연방헌재의 판결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우리나라에도 그러한 배경이 존재해왔더라면, 항상 제자리를 맴도는 방송수신료 인상 논쟁이 해결될 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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