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에는 언제나 집권세력이 연루된 대형 부패 사건 때문에 온 나라가 떠들썩해지고는 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김현철씨 관련 의혹이 불거졌고, 김대중 대통령 역시 아들 사건 때문에 대국민 사과를 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청와대 정책실장이 신정아씨와 관련된 사건에 연루됐다. 이명박 정부 막바지에는 대통령의 친형과 멘토가 구속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선실세’ 때문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탄핵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 부패 스캔들에서 예외적으로 자유로운 것처럼 보인다. 임기 초에 청와대 정무수석이 뇌물 혐의로 기소돼 일부 유죄를 선고 받았고, 임기 중반에 기소된 전직 법무부 장관은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지만, 사실상 임기 마지막 해에 해당하는 올해 들어서 대통령 주변 인물이 부패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대통령의 친인척은 물론이고 청와대 관계자와 180명에 육박하는 범여권 국회의원 중에서도 부정한 돈을 받은 혐의로 조사받고 있는 사람은 없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 부패 스캔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 집권세력의 도덕성이 예외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둘째, 부패를 적발할 수 있는 부패 대응 능력이 예외적으로 무너졌기 때문이다. 첫 번째 경우라면 우리사회가 과거보다 진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두 번째 경우에 해당된다면 오히려 사회가 퇴보하고 혼탁해진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집권세력의 도덕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부패 대응 능력이 과거보다 후퇴한 것으로 보이는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LH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재보선을 앞두고 국민적 분노가 끓어오르자 여야가 특검 도입까지 합의했지만, 선거가 끝나자 특검 논의는 조용히 사라졌고, 경찰 역시 주목받을 만한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라임이나 옵티머스 등 정관계 로비 의혹이 제기된 사건들 역시 실무자 선에서 형사처벌이 마무리되고 있다. 국민적 의혹은 과거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지만, 수사 결과는 번번이 예상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정함은 검찰과 경찰 개혁의 핵심이다. 상대가 누구든지 공평하게 수사를 철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누구든지 공평하게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패에 대한 처벌이 어려워질수록 이득을 보는 것은 경제권력이나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부패 대응 능력 약화는 권력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불공정한 특혜를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남시 대장동 개발을 둘러싼 의혹이 여야를 가리지 않는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형사사법체계를 지난 4년 동안 혁명적으로 개혁한 문재인 정부가 상대가 누구든 철저하게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인지 아니면 상대가 여당이든 야당이든 제대로 수사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든 것인지, 경찰, 검찰, 그리고 공수처가 또 한 번 시험대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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