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남긴 무기를 북한에 판매할 건가?”, “고 윤장호 하사 폭탄 테러 사건, 샘물교회 납치·살해 사건에 사과할 생각 있나?” 멀게만 느껴지던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을 우리나라와 연결 짓는 질문이다. 지난달 15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후 관련 뉴스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외신 인용이 아닌 우리의 시각으로 탈레반을 직접 취재한 보도들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SBS 워싱턴 특파원인 김수형 기자는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탈레반 대변인 무하마드 수하일 샤힌과 화상 인터뷰를 했다. 샤힌은 아프간 장악 직후 BBC 앵커와 뉴스 생방송 도중 즉석 인터뷰를 해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지난 6일 보도된 SBS 인터뷰에서 샤힌은 “북한에 미군 무기를 절대로 판매하지 않겠다”고 했고, 2007년 탈레반 테러로 숨진 고 윤장호 하사와 피랍·살해된 샘물교회 선교단에 대해선 “지나간 일”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김수형 기자는 ‘한국 관련 입장을 누군가는 물어봐야한다’는 생각으로 탈레반에 접촉했다. 미국의 시각이 반영된 뉴스 사이에서, 기자로서 또다른 당사자의 얼굴을 직접 보고 취재하고 싶었다. 시작은 “대서양에 돌멩이 던지는 심정”이었다. 수소문 끝에 샤힌의 전화번호를 얻어 인터뷰 요청 메시지를 숱하게 보냈다. 두 차례의 펑크와 독촉, 기다림이 반복됐다. 실제 인터뷰가 성사되기까지 열흘이 걸렸다. 미리 질문지를 전달하지 않았는데도 한국 관련 질문에 막힘없이 답하는 샤힌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김수형 기자는 “우리 입장에서 탈레반은 여전히 테러리스트라는 인상이 강한데 샤힌은 굉장히 정중한 모습이었고 한국을 비롯해 국제정세에 대한 학습이 잘 돼 있었다”며 “다만 샤힌이 탈레반 전체를 보여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상국가의 대변인 같은 발언은 반대로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궁박한 처지를 드러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탈레반을 직접 취재하고 있는 김영현 연합뉴스 뉴델리 특파원도 탈레반 지도부와 일선 대원들의 인식 차이가 크다고 평가했다. 김영현 기자는 지난달 탈레반 대외 홍보창구인 문화위원회 소속 간부 압둘 카하르 발키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한국을 향한 탈레반의 공식 입장을 보도했다. 김영현 기자는 “탈레반 대부분은 문맹이라고 알려졌는데 지도부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고 여러 면에서 영리하게 대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도 “지도부의 인식이 아래 대원들까지 제대로 전달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고 말했다.
한국 언론의 탈레반 직접 취재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프간 내부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요동치고 있고, 향후 탈레반 정부가 정상국가로 인정받는다면 우리와 직결되는 사안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달 SNS로 탈레반 간부 발키를 인터뷰한 고대영 이투데이 국제부 기자는 “국내 언론에 탈레반 기사는 많은데 생각보다 직접 접촉해서 쓴 기사는 없었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계속 시도하다보니 이뤄졌다”며 “상대와 시차를 느끼지 않고 대화하려면 밤을 새야하긴 하지만 SNS를 통한 탈레반, 아프간 취재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김수형 기자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가 아프간에 대사관을 열게 되면 탈레반을 실질적인 지배세력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도 고려하게 될 것”이라며 “그땐 아프간 재건사업이나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우리 언론이 탈레반을 더 빈번하게, 직접적으로 취재하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