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금을 내걸어 기자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기자활동과 관련 없는 개인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가 등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기자협회는 기자 개개인의 사생활 침해와 명예 훼손, 기자사회 전반의 혐오를 부추기는 해당 사이트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기자 백과사전을 표방한 ‘마이기레기’가 기자사회에 알려진 건 지난달 말이었다. 지난 3월 운영을 중단했던 해당 사이트는 6월 재오픈을 공지하며 “기자 뒷조사를 해줄 분들을 찾는다”고 했다. 지난달 본격적으로 운영을 재개한 이후 현재까지 기자 6000여명의 이름이 여기 올라있다. 기자별 페이지마다 사진, 학력, 경력, 논란거리 등과 함께 ‘학교폭력, 광고 강요, 기사 조작, 김영란법 위반, 방역수칙 위반 등 기자들의 위법행위를 제보해 달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기자 6000여명 이름 올리고 혐오 부추겨… 가족·지인 얼굴까지 공개
사이트 운영자는 기자들에 대한 정보를 A급(각종 비리·위법 사항·학교 폭력), B급(경범죄·방역수칙 위반), C급(현재 사진·과거 정보)으로 나누고 정보비 명목으로 1건당 최대 30만원의 현상금을 걸기도 했다. 운영자는 사이트에 올린 입장문에서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정화운동 차원에서 기자들의 불법, 탈법, 위법 사항을 공개한다”고 주장했다.
언론계에선 기자들의 위법행위를 고발하겠다는 이 사이트가 오히려 위법행위를 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사이트는 기자들의 사진뿐 아니라 기자의 가족과 지인들의 얼굴까지 공개해 이들의 사생활을 침해했다. 기자가 개인 SNS에 남겼거나 인터넷상에 남아있는, 기자 업무와 연관 없는 사진, 글, 정보들도 수집해 노출했다. 취재원의 발언을 인용한 기사를 두고 마치 기자의 생각을 직접 표현한 것처럼 편집하거나 부적절한 코멘트를 달아 기사의 취지를 왜곡하고 기자를 비난하는 데 활용하기도 했다. 댓글에는 기자를 향한 비방과 욕설이 달리고 있다.
해당 사이트에 얼굴 사진과 각종 정보 등이 노출된 한 기자는 “개인 SNS에 내 사진을 올리는 것과 이런 사이트가 일방적으로 수집해 공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맥락의 문제”라며 “취재과정에서의 위법행위나 기사를 가지고 비판하는 거라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기자의 업무와 관련 없는 사생활 정보를 수집하고, 제보자에게 돈을 주겠다고 공공연히 밝히는 행태는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협회장 “기자들, 개인 피해라 생각지 말고 고소 적극 동참해달라”
한국기자협회는 이 사이트를 상대로 피해를 호소하는 기자들의 고소와 협회 차원의 고발을 이번 주 중 진행할 예정이다. 기자협회 자문변호사로 이번 고소·고발의 법률대리를 맡은 진한수 변호사는 “기사에 문제가 있다면 공식적으로 이의제기할 수 있는 방법을 거치지 않고 이런 사이트를 통해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라며 “명예 훼손과 모욕, 넓게는 허위사실 유포 또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소를 결정한 한 기자는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제 개인정보를 공개한 사이트를 보고 소름끼쳤다”며 “기자 대부분은 심한 욕설이 담긴 이메일을 자주 받는데, 저는 그때마다 개인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번 경우엔 실질적인 개선을 기대하면서 협회 차원의 대응에 참여했다”고 했다.
기자협회는 지난 6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인터넷 피해 구제 신청서를 제출하고 해당 사이트 폐쇄 또는 접속 차단 등의 조치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 사이트가 △내용에 대한 검증 없이 편향적인 접근으로 언론보도를 거짓으로 몰아감으로써 언론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기자 개인과 가족들의 사진을 사전 승인 없이 도용하고 개인 정보를 공개해 기본권 침해, 명예 훼손 등의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김동훈 기자협회장은 “그들은 잘못된 언론 관행을 바로잡고 언론을 정화한다는 취지를 내세우지만 오보나 가짜뉴스와 전혀 상관없는 기자들에게도 인신공격을 하고 있다. 명백한 범죄행위에 강력하게 대응할 방침”이라며 “기자들은 개인적인 피해라고 생각해 넘기지 말고 우리 기자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를 함께 해결하자는 마음으로 단체 고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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