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의사보다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선언적인 말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살예방에 있어서 미디어의 역할과 책임은 매우 크다. 이는 해외에서도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사실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자살예방을 위해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4가지 사항 중에서 ‘미디어와의 공감형성 및 협력 노력’을 명시하고 있다.
수백 년 전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썼던 책을 읽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년들이 증가했던 현상에서 유래된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 베르테르 효과는 기술 발달로 새롭게 나타난 다양한 미디어 영역의 문제로 확대되었다.
특히 어떤 장소에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언론이 보도하는 경우 자살수단에 대한 학습효과가 나타난다. 과거 오스트리아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수도 비엔나에 지하철이 최초로 개통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들이 발생하였다. 오스트리아 언론은 해당 사건을 자세하게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엔나 지하철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빈도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는 언론의 사건보도가 모방자살 등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통용된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언론은 자살예방에 있어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오스트리아의 경우가 그렇다. 비엔나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연이은 투신 사건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에 자살예방에 관심이 있는 전문가들과 오스트리아 기자협회는 사건 보도를 최소화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하지 않기로 협력하였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언론과의 협력이 구체화된 시점부터 비엔나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자살시도 빈도는 크게 감소하였다. 언론이 자살예방에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외람된 말이지만 우리나라 또한 언론의 자살보도가 필요 이상으로 구체적인 때가 있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유명인의 자살사건 발생 시 자살수단을 어디서 구입하였는지, 어떤 방법으로 시도하였는지 등에 대한 내용이 ‘단독’과 ‘속보’라는 이름으로 보도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다르다. 언론이 자살사건 보도를 대하는 인식은 10여 년 전과 확연하게 달라졌음을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이는 언론현장에 종사하는 많은 언론인들이 자살예방에 있어 언론이 지녀야 할 책임의식에 대해 많은 공감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라 믿는다.
9월10일은 자살예방의 날이다. 특히 올해는 자살예방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지난 10년간 자살예방을 위해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이 노력해 이룬 성과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자살보도권고기준3.0을 바탕으로 언론인들과 협력해온 성과들은 가장 가시적인 변화를 보여왔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언론인들이 자살보도에 있어 보여준 책임의식과 공감, 이를 바탕으로 함께 협력해온 성과들은 이제 다른 해외 국가들에게도 자신있게 소개할만한 것들이라고 자신한다.
이제 앞으로 또 다른 10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다. 미디어와 함께 이어나갈 협력 사업들도 지금의 상황에 안주하면 안될 것이다. 정부와 우리 재단 또한 ‘어느 누구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으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살, 정신건강과 관련된 많은 사회적 편견 등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이제 또 다른 10년을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 언론현장에 종사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과 협력을 부탁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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