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 협박, 다음은 깽판?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특파원

13년여에 걸친 좌파 장기집권에 대한 피로감과 잇단 부패 스캔들,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 정국 혼란은 정치권 아웃사이더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백인 기득권층과 중도 정당, 재계, 군부,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중산층은 변화를 원했고, 그들의 선택은 뜻밖에도 극우 정치인이었다. 2018년 말 대선에서 승리한 그는 ‘신화’로 불렸다. 브라질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얘기다.


그의 실체는 2019년 초 취임 직후부터 드러났다. 그는 ‘증오’를 정치의 도구로 삼았다. ‘증오 내각’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을 공격하는 대통령 측근 그룹을 말한다. 이들은 보우소나루의 뜻을 거스르는 모두를 적으로 간주했다. 그러는 동안 보우소나루의 권위주의적·독단적 행태는 극으로 치달았다. 누군가 그를 로마제국 네로 황제에 비유해 ‘보우소네로’(BolsoNero)로 표현했다. 좌파에 대한 증오는 상상 이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옛 책사인 극우 인사 스티브 배넌의 발언에서 보우소나루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보우소나루 일가와 가까운 배넌은 내년 브라질 대선이 남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며, 보우소나루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좌파 인사와 맞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이다.


지지율이 좀처럼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으면서 보우소나루의 행태는 ‘협박’으로 넘어갔다. 선거제도를 트집 잡았다. 브라질에서는 1996년부터 전자투표가 시행되고 있으며, 현재 모든 투표가 용지 없이 치러진다. 보우소나루는 전자투표 때문에 2014년과 2018년 대선 결과가 왜곡됐다며 검표 가능한 투표용지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전자투표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내년 대선에서 패배해도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전자투표가 시행된 이래 부정선거 시비가 제기된 적은 없다. 보우소나루 자신이 전자투표로 여러 차례 하원의원에 당선됐으면서 부정선거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은 가짜뉴스라는 지적이 나왔다. 다음 타깃은 대통령을 가장 강력하게 견제하는 대법원이었다. 보우소나루는 자신을 가짜뉴스 유포 행위 조사 대상에 올린 대법관 탄핵을 시도했다. 현직 대법관에 대한 탄핵 시도는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상원이 대법관 탄핵 요구를 거부하면서 체면을 구기자 전자투표 폐지에 반대한 다른 대법관 탄핵 요구는 마지못해 철회했다.


대법관 탄핵 시도로 보우소나루는 정치적 고립을 자초했다. 자신뿐 아니라 측근들도 직권남용, 가짜뉴스 유포, 선거제도 부정, 민주주의와 국가기관에 대한 공격 등 혐의로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궁지에 몰릴수록 보우소나루의 입은 거칠어지고 있다. 자신을 지지하는 복음주의 개신교 행사에서 그는 “내 펜 끝에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군부를 부추겨 친위 쿠데타라도 일으키겠다는 것이냐는 비난이 일었다. 보우소나루가 브라질을 ‘바나나 공화국’으로 만들고 있다는 조롱도 들린다. 바나나 공화국은 정국이 극도로 불안정한 국가를 경멸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보우소나루는 7일 브라질 독립기념일을 맞아 대대적인 친정부 시위를 부추겼다. 대법원을 향해서는 독립기념일 시위가 ‘최후통첩’이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독립기념일 시위를 계기로 브라질 정국은 더욱 혼돈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 ‘브라질의 트럼프’를 자처하는 보우소나루가 트럼프의 도발적 행태를 따를 것이라는 관측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올해 1월 초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을 유도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 브라질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법조계, 언론계는 미국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최근의 언론 보도를 보면 보우소나루 자신도 내년 대선에서 재선이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에 몰린 보우소나루가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판을 뒤집으려는 사태가 벌어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대통령 스트레스’를 넘어 ‘대통령 리스크’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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