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스스로 자정 하려면, 실효성 있는 규제기구에 몸 담아야"

[이슈 분석] '언론불신' 넘어 '피해구제'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上)

  • 페이스북
  • 트위치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당 단독으로 처리된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외벽에 언론중재법 개정에 반대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시스

“기레기들이 반대하는 거 보니 꼭 필요한 법이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 강행처리를 비판하는 언론계 반응을 담은 기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댓글이다. “자업자득이다”, “그러게 잘하지 그랬냐”며 혀를 차는 반응도 흔하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라며 언론중재법 개정에 반대하는 이들도 언론에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언론인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언론자유 수호’를 외쳤던 일부 시민단체조차 ‘언론의 책임’을 더 강조하며 징벌적 손배 찬성 여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개혁 대상인 언론이 ‘언론개혁’의 주체가 돼선 안 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하는 물음에 따라붙는 것은 ‘이 지경이 되도록 언론은 뭐 했나?’라는 질문이다. 일부 기자들은 언론이 저질 기사를 양산하고 정정보도에 소극적으로 응하며 불신을 키워 왔다는 이유로, 그런데 개선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징벌적 손배제 도입에 ‘비판적 지지’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의 자정 노력과 자율규제 강화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도 크다. 분명한 건 언론계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반대’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후 처벌·퇴출 같은 페널티 넘어, 익명보도 줄이기 등 관행 탈피 필요

언론계 역시 심각성을 알고 있다. 지난 1일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현업 5단체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제기된 언론 불신과 저널리즘 품질, 허위조작정보 유통 문제 등과 관련해서 언론계를 넘어서는 미디어 사업자들, 관련 현업단체들, 시민사회와 학계까지 참여하는 저널리즘윤리위원회, 미디어윤리위원회 같은 자율심의기구를 하루빨리 구성하자”고 제안한 건 그래서다.


바로 다음 날 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 언론노조 등 현업 3단체와 한국신문협회·신문방송편집인협회·인터넷신문협회 등 사용자 3단체가 모여 자율규제, 심의기구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들 단체는 8일 2차 협의를 하고 가급적 추석 이전에 기구 발족을 알리는 기자회견 등을 개최할 예정이다. 일단 6개 단체로 출발하지만, 포털과 IPTV·SO(종합유선방송사업자)·PP(방송채널사용사업자) 같은 유료방송·플랫폼 사업자까지 참여하는 기구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김동훈 기자협회장은 “허위조작정보 척결과 자정을 위한 우리의 의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언론 자율규제기구’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해왔다. “실효성 있는 자율규제기구에 언론사들이 스스로 가입하고, 그렇게 자율규제기구에 가입한 언론에 일정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언론의 품질을 개선해 보자는 것”이다. 이 기구가 “언론중재위와 경쟁”해야 한다고도 했다. 중요한 건 실효성이다. 심 교수는 지난달 30일 한겨레 기고문에서 “기존의 자율규제기구들처럼 봐주기식 결정이나 내리면 무용지물”이라며 “두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기구의 독립성과 전문성, 그리고 참여하는 언론사들에 대한 ‘확실한 인센티브’다. 포털의 뉴스 제휴 심사나 언론진흥기금, 지역신문발전기금 등 각종 지원 시 자율규제 참여를 반영하자는 제안이다.

신윤위 등 자율규제기구 있지만, 제재 실효 떨어진다는 지적 이어져

언론계엔 이미 신문윤리위원회와 인터넷신문위원회 같은 자율규제기구가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된 기사에 대해서도 ‘주의’를 주는 수준에 그치는 등 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따라서 언론 사용자-현업 6단체가 꾸릴 자율규제기구는 단순히 선언적인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들 단체 내부에도 있다. 김동훈 회장은 “언론윤리를 저해하거나 위반한 회원사(언론사) 또는 기자를 징계하고 심하면 제명까지 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사후 처벌, 퇴출과 같이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을 넘어 저널리즘 관행을 바꾸는 작업에도 나서겠다고 했다.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문제가 되는 기사에 대한 자율기구의 평가와 저널리즘 관행으로 인정되는 기준이 쌓이면 기사를 쓸 때 무엇을 충족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져서 익명 보도를 줄이고 출처를 밝히고 설명을 강화하는 식으로 관행이 바뀌어 가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언론계 내부가 윤리강령을 강화하고 선언문이나 반성문 쓰고 이런 자성 노력만으로는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자율적인 심의와 징계가 플랫폼 사업자까지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런 활동을 지원하는 게 정부와 정치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김고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