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라는 사회를 취재하고 있는 외신 기자들의 보도는 국내 사안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이 되기도 한다. 최근 주목받은 건 양궁 올림픽 국가대표 안산 선수의 머리 모양을 빌미 삼아 이어진 인신공격에 대한 보도였다. 사안이 불거진 초기, 국내 언론이 ‘논란’, ‘젠더 갈등’이라고 표현했던 반면 로이터 통신, BBC 등의 외신은 ‘온라인 학대’(online abuse), ‘반 페미니즘 정서’라고 현상을 명명했고, 이후 많은 국내 언론사가 이들 보도를 인용하기도 했다.
기자협회보는 국내 언론사 기자들과 함께 부대끼며 취재하고 있는 외신기자 4명에게 일상을 물었다. 강진규 AFP 기자, 송정아 파이낸셜타임즈(FT) 기자, 스즈키 소타로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서울지국장, 이하경 ABC뉴스 PD는 많게는 24년, 적게는 5년째 한국을 취재해 온 외신기자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취재하고, 보도하고 있을까.
해외 매체의 서울 지국은 대부분 소규모 인력으로 꾸려져 있다. AFP와 닛케이는 6명, FT와 ABC뉴스는 각각 2명, 3명의 기자가 서울 지국에서 한다. 이들은 “외신 서울 지국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는 한반도 문제를 중점적으로 보도한다. 글로벌 인기를 끌고 있는 K-콘텐츠, 전기차 배터리·반도체처럼 새롭게 떠오르는 경제 핵심에 진출한 한국 기업 등 외신 기자들이 전달하는 한국에 대한 주제는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 출소는 외신들이 모두 주목한 사안이기도 하다.
취재원을 만나거나 중요한 사안에 대한 브리핑을 챙기는 등의 취재 방식은 국내 언론사 기자들과 다를 바 없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으로 한국 사안을 다뤄야 하니 특정 출입처에 상주하지는 않는다. 다만 닛케이의 경우 도쿄 본사에서 파견한 특파원들은 기존에 본인이 소속해 있던 부서에 따라 서울에서도 해당 분야를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AFP와 FT의 서울 소식은 주로 홍콩의 아시아 본부에서, ABC뉴스는 런던의 국제 데스크가, 닛케이는 도쿄 본사에서 감독한다. 본사나 국제뉴스를 담당하는 해외 본부와의 시차 때문에 기자들은 늦은 밤에 기사 관련 연락을 받게 되는 경우도 많다. “서울 지국에선 당일 뉴스보다는 주로 피처 기사를 보도해 매일 마감이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런던에 국제뉴스 데스크가 있어 저희가 완성한 기사를 보내면 그곳의 오버 나잇(당직) 에디터가 데스킹을 하는 식이에요. 다만 뉴욕 본사와 작업할 때가 조금 힘든데 밤 11시에 편집 관련 질문을 하기도 하고, 에디팅이 길어지면 새벽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죠.”(이하경 ABC뉴스 PD)
반면 온라인에 기사를 우선 출고하는 ‘디지털 퍼스트’ 시스템이 이미 정착된 FT와 닛케이의 한국 특파원들은 본사와의 시차나 지면 마감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기사를 송고한다. 두 언론사는 디지털 유료 구독자 확보에 성공한 곳이기도 하다. 올해 7월 닛케이 인터넷판 유료회원 수는 81만1000여명이다. 두 언론사 특파원들에겐 “트래픽 높은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할 수는 없다”라는 인식이 자리 잡혀 있었다. 기자협회보가 한국기자협회 창립 57주년을 맞아 기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7일부터 일주일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기자들의 38.5%가 ‘조회 수에 압박감을 느낀다’고 한 것과는 상반된 반응이다.
“페이지뷰(PV)만 아니라 기사 체류 시간, 기사 저장, 기사가 유료 구독까지 이어지는지 등 7개의 항목에서 기사를 종합평가하는 ‘engagement score’가 기자들에게 중요한 지표에요. PV로만 평가를 한다면 자극적인 소재의 기사가 나올텐데 그게 유료 구독을 끌어낼 만한 가치있는 기사는 아닌 거죠.”(스즈키 소타로 닛케이 서울지국장)
유료 구독 기반이 아닌 매체의 외신 기자들은 트래픽이 온라인 대응에 중요한 기준이지만, 트래픽만을 맹목적으로 바라보는 행태에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하경 ABC뉴스 PD는 “우리도 독자가 많이 볼 기사, 트래픽에 신경을 어느 정도 쓰지만 잘못된 정보를 보도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원칙이 있다”며 “단적인 예로 최근 포털 사이트에 거의 도배가 되다 거짓으로 판명된 ‘남아공의 한 여성이 열 쌍둥이를 한 번에 출산했다’는 기사의 경우 우리 회사에선 남아공 현지에서 의료기록을 확인할 때까지 보도하지 말라는 지침이 나왔고, 그래서 끝까지 이 소식을 보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진규 AFP 기자는 “우리는 통신사라 도매업자로서 전재한 언론사들이 얼마나 되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독자의 선택을 많이 받으면 회사 입장에선 좋겠지만, 그렇다고 조회 수를 기자 개인에게 강요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 지국장이 취임할 때마다 우리나라 대기업 대표에게 인터뷰 요청을 한단 말이에요. 기업들은 인터뷰를 잘 안 하려고 하는데 그걸 이해 못 해요(웃음). 글로벌 신문에서 인용한다고 하면 다들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FT의 분위기를 묻자 송정아 기자는 이같이 말했다. 송 기자는 “모국어이지만 한국어로 기사 쓰라고 하면 못 쓸 거 같다”고 말할 정도로 기자 교육부터 외신에서 시작했다. 국내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던 그는 대학원 재학 중 교수의 추천으로 1998년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에서 뉴스 어시스턴트로 들어갔고, AP통신에서 주니어 리포터 과정을 거친 후 2003년부터 FT의 한국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기사 퀄리티에 대한 기준이 굉장히 까다롭다는 건 힘들지만 기자로서는 좋은 점”이라고 말했다. “저희는 사안을 깊이 있고, 넓게 접근해요. 독자가 기사 하나를 읽으면 그 기업에 대해 웬만큼 알게 되는 수준까지 써야 하는 거죠. 또 저희는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주주 중심주의를 중요하게 여겨요. 광고에 대해서도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없어요. 우리나라는 기자들이 광고 따오고 영업도 하잖아요. 저희는 그런 거 상상할 수 없어요.”
강진규 기자는 국내 언론사와 외신이라는 조직을 모두 경험하며 취재와 보도 관행에서 많은 차이를 느끼기도 했다. 그는 2012년 뉴시스에 입사해 수습기자로 영등포경찰서에서 ‘사쓰마와리’를 돌다 퇴사한 후 코리아중앙데일리를 거쳐, AFP에서 일하고 있다. “외신에선 취재원 인터뷰를 인용할 때 소위 ‘마사지’를 해서는 안 되고, 문법이 틀려도 관사 하나라도 그대로 들어가야 해요. 데스크들도 인권에 대한 기준이 확실히 자리잡혀 있다고 느꼈어요. 성 소수자· 인종차별 등 기사 내용과 제목이 선입견을 더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굉장히 경계하더라고요.”
이하경 PD가 ABC뉴스에서 느낀 건 무엇보다 조직 내 위계질서가 없다는 점이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것 같더라고요. 어느 조직이든 이상한 사람은 항상 있고, 애매하게 인종차별 하는 외국인도 있지만, ‘꼰대’ 문화는 정말 없고, 업무적으로 동등하다는 걸 느껴요. 런던 시간으로 매일 오전 10시에 전 세계 특파원 20여명이 모여 화상 회의를 하는데 그곳에서도 기자들 경력이 다 상이하잖아요. 하지만 그 누구의 의견이 더 가치 있을 거라고 먼저 판단하지 않아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뉴스 미디어의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대다수 언론사들이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기자들도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에게 기자라는 직업의 만족도는 어떤지 물었다.
“저는 제가 아주 좋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일본에서도 언론사는 너무 힘들다는 인식에 젊은 세대들에게 기자라는 직업이 옛날만큼 인기가 없어요. 신문기자 하다가 학자가 되겠다고, 창업하겠다고 떠나는 친구도 있고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 세계적인 흐름이 아닌가 싶어요.”(스즈키 소타로 닛케이 서울지국장)
“직업 만족도는 최상이에요. 뉴스 미디어 위기 속에서 전 세계 언론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혁신을 하고 있는데 그 과정을 같이 하는 것이 너무 재밌어요. 저희 회사는 제가 입사했을 때랑 지금이랑 정말 천차만별로 많이 바뀌었어요. 사람들이 우리를 먼저 찾기 위해 회사가 투자하고, 방법을 찾고 있는데 저도 같이 성장하는 느낌이 들어 늘 즐거워요.”(이하경 ABC뉴스 PD)
“월급 빼고는 다 만족스러워요. (웃음) 회사에선 중립적인 기사를 원하니까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고, 기업 친화적인 기사를 쓸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기자로서 활동하기에는 좋은 거 같아요.”(송정아 F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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