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법치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지난 2016년 산둥성 지난에서 열린 중국 기업인 연례 회의에서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과 중국 최대 사교육 기업인 신둥팡 창업자 위민훙 회장이 조우했다. 위민훙은 마윈에게 “아마도 10년간은 알리바바가 존재하겠지만 100년 후에는 없을 거다. 하지만 100년이 지나도 교육은 존재할 거고 신둥팡도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 농담을 건넸다. 이에 마윈은 “10년 후에도 알리바바가 있을 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신 말대로 교육은 계속 존재할 거다. 그렇더라도 신둥팡이 반드시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맞받아쳤다. 두 거물 기업인의 입씨름에 당시 회의 분위기가 한층 유쾌해졌다는 전언이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이 흐른 현재 알리바바와 신둥팡은 창업 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마윈과 위민훙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사라진 지 오래다. 시작은 지난해 10월 마윈이 상하이에서 열린 금융 포럼에서 당국과 은행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부터였다. 그 직후 알리페이 운영사인 앤트그룹 상장이 취소됐고, 올 들어 알리바바에는 3조원이 넘는 역대 최대 규모의 벌금이 부과됐다. 당국의 전방위 규제에 알리바바는 공중 분해를 걱정할 처지에 내몰렸고, 마윈은 잠적에 가까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신둥팡은 지난달 중국 정부가 발표한 사교육 규제 방침의 최대 희생양이 됐다. 학생들의 학업 부담과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인다는 이른바 ‘쌍감(雙感)’을 화두로 삼아 사교육 업계에 융단 폭격을 가하는 중이다. 신규 사교육 업체 설립을 금지하고 기존 업체는 비영리 기관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사교육 기업에 대한 투자까지 제한하는 사실상의 고사 작전을 벌이고 있다. 알리바바와 신둥팡 입장에서 10년은 커녕 5년 후 미래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밖에도 차량 호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디추싱, 게임 공룡인 텐센트, 외식 배달 업체인 메이퇀 등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들 역시 당국의 타깃이 됐다. 중국이 민간 기업 때리기에 나서면서 내건 기치는 ‘공정’과 ‘법치’다. 얼마 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공동으로 ‘법치 정부 건설 시행 요강’을 발표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2025년까지 지속될 14차 5개년 계획 시기에 법치 정부 건설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로드맵이자 설계도”라고 평가했다. 1차 과제인 샤오캉(小康·물질적 풍요)을 이뤘으니 빈부 격차와 양극화를 해소하고 다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법치를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는 해석도 곁들였다. 이 과정에서 불공정 관행에 찌든 기업들은 손을 봐줘야 한다. 인민의 주머니를 털어 제 배를 채우는 알리바바, 청소년들에게 정신적 아편인 게임을 파는 텐센트, 저소득 배달원을 착취하는 메이퇀 모두 자아 비판이 시급한 존재들이다.


사교육 규제의 명분은 더 거창하다. 과도한 사교육이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켜 혼인율과 출산율 저하에 영향을 끼친다는 게 중국 정부의 판단이다. 중국 역시 명문 학교 진학이 신분 상승을 위한 사다리로 인식되다 보니 비싼 돈을 내고 사교육을 시킨다. 그 대열에 합류할 수 없는 부모는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양극화 심화는 사회주의의 제도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절대 용인할 수 없다. 부동산 가격 급등의 주범으로 지목된 학세권 주택 ‘쉐취팡(學區房)’ 규제도 같은 맥락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쉐취팡 투기를 막으라”고 지시한 만큼 당국은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시점이 공교롭다. 내년은 중국 공산당의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가 열리는 해다. 시 주석의 연임 여부가 걸린 최대 정치 이벤트다. 재집권으로 향하는 길에 놓인 각종 걸림돌을 사전에 제거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민심에 소구하기 위한 정치 행위다. 최근 중국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이 대선 국면에 접어든 한국의 모습과 여러모로 닮은 꼴이라는 게 흥미롭다. 기업 규제 완화 논란, 여전한 사교육 문제, 들끓는 부동산 시장에 공정과 법치라는 시대 정신까지. 많이 알려졌다시피 중국 공산당은 한다면 한다. 한국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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