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름마다 기록적인 재난이 찾아왔다. 이번 여름도 예외는 아니다. 늦게 시작한 장마가 찔끔 끝나버렸고 이후 ‘열돔’ 폭염이 이어졌다. 2018년 이후 3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에 온열질환 사망자도 나날이 늘었다. 폭염의 최대 고비는 넘겼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태풍의 시간이 남아있다.
해마다 심해지는 재난 탓에 여름이 길게만 느껴진다. 요즘 태풍은 가을인 9월, 10월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여름만 지난다고 재난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하면서 재난으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을 목격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긴 장마로 특히 피해가 컸다. 어느 가족은 아늑한 집에서 잠을 자다가 목숨을 잃었고 누군가는 익숙한 지하차도에서, 동네 산책길에서 죽음을 맞았다. 재난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을 포함해, 재난 생존자들은 지난 1년간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날씨의 흉포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그들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
지난해 7월23일 밤 부산에 폭우가 퍼부었다. 도시 전체가 물바다가 됐는데 저지대였던 초량 제1지하차도 역시 침수됐다. 차량 통제는 이뤄지지 않았고 3명이 사망했다.
엄마는 소중한 딸을, 동생은 듬직한 형을 잃었다. 어떻게 이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까. 가슴이 먹먹해서 거듭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부산 폭우 당시 KBS는 재난방송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나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시간이 지난다고 상처가 잊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재난 생존자들의 시간은 사고가 났던 그 날 그 시간에 멈춰있었다. 특히 딸을 살리지 못하고 혼자 구조된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딸은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에 들어왔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가족을 보러 부산에 내려왔고 하필 그날이었다.
이들의 바람은 단 하나였다. 지난해에는 도심 한 가운데에서 사람이 물에 빠져죽어도 구조의 손길이 닿지 않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는 거다. 비가 많이 올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지하차도 근처에는 가지도 못한다는 유가족들이었다.
재난 생존자들을 만나며 느낀 점은 또 있었다. 피해를 입은 이들은 공통적으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이어가고 있었다. 침수의 경우 재난 지원금이 200만원에 불과했다. 그 외 보상은 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어려웠고 특히 천재지변은 법적으로 정부의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 예측 불가능한 날씨가 일상이 된 지금, 천재지변을 이유로 책임을 피해갈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잠재적 재난 생존자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현장에서 만난 재난 생존자들을 떠올리며 더욱 사명감을 가지고 재난방송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 정보를 전하는 게 내 일이니까.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이지만 더 이상 가슴 아픈 일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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