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 하계 올림픽이 지난 8일 폐막했다. 선수들의 땀과 눈물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남겼지만 언론은 여러모로 비판받은 이벤트였다. 특히 ‘올림픽 정신’에 걸맞지 않거나, 성차별적 인식을 드러낸 중계·보도처럼 시대 변화에 발맞추지 못한 행태에 질타가 잇따랐다. 무엇보다 지상파의 역할은 어때야 하는지, 재미 너머 스포츠 저널리즘의 본령은 무엇인지에 대한 총체적인 재고가 과제로 남는다.
지상파 중계방식, 올림픽 정신 무색... 언론이 시대상 변화에 발 못 맞춰
‘올림픽 정신’에 부합지 못한 중계로 언론은 개막식부터 지탄을 받았다. MBC는 우크라이나 선수단 입장 시 20세기 최대참사 중 하나인 ‘체르노빌 원전사고’ 사진을 사용했다가 사장이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MBC 사고’에 묻혔지만 타 지상파에서도 문제적인 발언이 개막식 중계 과정에서 나왔다. SBS는 ‘간호사 복서’ 쓰바사 아리사 선수가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퍼포먼스를 두고 “홈트레이닝하는 모습인데 홈쇼핑하는 느낌도 나네요”라며 비하조 중계를 했다가 입길에 올랐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KBS시청자위원)은 “KBS 중계에서도 사진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 우크라이나, 투발루를 소개하며 ‘체르노빌 사고가 있었다’, ‘바다에 잠길 위기에 처한 나라’라는 얘기 등이 나왔다. 시청자 이해를 돕기 위해 콘텐츠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쉽게 접근했고, 재미를 주려다 방송의 본분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라며 “방송사 콘텐츠가 넷플릭스에 들어가 곧장 그 나라 언어로 보는 환경인데도 타 문화에 대한 존중은 부족했던 인식이 이번에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쟁에 치중해 타국 선수를 조롱하거나 금메달 중심주의에 매몰된 중계 행태는 이 연장선에 놓인다. MBC는 “고마워요 마린” 자책골 자막(대 루마니아 축구, 7월25일), “우리가 원했던 색깔의 메달은 아닙니다만”(안창림 유도 동메달 획득 후, 7월26일), “완전히 찬물을 끼얹네요”(마라톤 오주한 선수 부상 기권 후, 8월8일) 발언 등으로 잇따라 구설에 올랐다. KBS 중계진은 여자 탁구 단식(7월25일)에서 룩셈부르크 대표 니시아리안 선수에 대해 “숨은 동네 고수” “여우처럼 경기한다”고 해 불필요한 비하란 질타를 받기도 했다.
언론보도에서도 성적 지상주의 경향은 팽배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5일 종합일간지 6개사, 경제지 2개사 등 총 8개 신문 모니터 결과를 통해 금메달에만 집중한 보도 행태를 지적했다. 특히 태권도의 경우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는 이유로 일부 언론에서 ‘노골드’ ‘수모’ ‘자존심 구겼다’ ‘망신 뻗쳤다’ ‘대망신’ ‘수모를 당했다’는 표현과 더불어 경기결과를 전했는데, 민언련은 “올림픽 목표가 메달이 될 수도 있지만, 선수와 종목에 따라서는 기록을 경신하거나 혹은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며 “순위만 중시하며 차별적 보도를 하는 것은 언론뿐”이라고 비판했다.
경쟁 치중하다 타국 선수 조롱... 성적 지상주의 보도 눈살
방송사 중계진의 잇따른 성차별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양궁 여자 단체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금메달을 딴 직후 중계진은 “태극낭자들의 꿈, 올림픽 9연패가 현실이 됩니다”(MBC), “얼음공주가 웃고, 여전사들 웃는 모습이 너무 좋네요”(SBS) 등 발언을 했는데, 여성을 차별적으로 대상화 한 얼음공주, 여전사, 태극낭자들 단어 사용을 두고 문제제기가 나왔다. 이런 해설의 원인으로 스포츠캐스터 대부분을 남성으로 꾸린 지상파 제작인력 성비를 지적하며 개선 필요성을 지적하는 기사도 잇따랐다. 참고로 이번 올림픽에서 SBS는 총 8명 캐스터 전원이 남성, KBS(15명)와 MBC(10명)는 각 1명만이 여성 캐스터였다.
이번 올림픽에서 드러난 지상파 방송사의 문제는 지난 2016년 리우 올림픽 때와 이전에도, 일반 시민들은 물론 언론시민단체들에서 지속 제기된 일이 되풀이 된 경우였다. 이번 올림픽을 호되게 치른 MBC는 지난 9일 ‘MBC 공공성 강화 위원회’ 설치, 게이트 키핑 강화, 임직원 인권의식 집중교육 등 전사적인 조치를 내놓은 상태다. 다만 정도의 차이 뿐 이번 올림픽을 거치며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한 것은 지상파 전반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최우선가치가 되며 인터넷상 ‘밈(meme)적 사고’를 거리낌 없이 적용해 온 스포츠 콘텐츠의 현재, 나아가 지상파의 품위마저 뒷전에 밀린 상황을 돌아볼 때다. 여자배구 한일전이 벌어진 지난달 31일 KBS2, MBC, SBS는 축구, KBS1은 야구 경기를 중계하며 불거진 ‘겹치기 편성’ 역시 향후 경영의 논리보다 지상파의 역할과 국민 신뢰 관점에서 전향적인 대응이 필요한 지점이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지난달 30일 ‘올림픽과 미디어’란 글을 통해 “올림픽 정신과 참가국을 존중하는 기본적인 인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동안 ‘해왔던 대로’ 일을 한 것에 그 원인이 있다. (중략) 일상적으로 방송을 예능적 감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라며 “그것(올림픽 정신)을 보여주어야 하는 방송, 미디어가 고정관념을 확산하고, 아무리 케이블 등 새로운 플랫폼과 시청률 경쟁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예능으로 모든 것을 ‘퉁’치려는 것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라고 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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