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기자들 "시켜보고 잘못하면 혼내는 게 교육인가요?"

[기자협회 창립 57주년 기획] 선배한테는 말 못하는 1년차들의 속내

  • 페이스북
  • 트위치

 

“언론환경이 이렇게나 어려운데 기성언론사에서 기자를 하겠다는 게 신기하다.” 종합일간지에서 근무하는 한 중견기자의 자조 섞인 말이다. 기자를 쓰레기에 빗댄 단어가 공공연히 쓰인지 오래고 언론 신뢰도는 바닥이라는 요즘. 기자들마저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언론계에 이제 막 발을 디딘 이들이 있다.


매체로서 신문과 방송의 영향력은 내리막인데도 이들에게 기자는 여전히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지난해~올해 입사해 경력 만 2년이 되지 않은 신다빈(방송사·이하 모두 가명), 이서정(일간지), 윤제덕(일간지), 최정환(지역언론사) 기자에게 물었다. “왜 기자가 되었나요?” “해보니 어떤가요?” 네 기자는 선배들에겐 말할 수 없는 속마음을 들려줬다.


저마다 기자를 꿈꾼 이유는 달랐지만 언론환경 악화나 ‘기레기’라는 인식은 진로를 결정하는 데 방해물은 아니었다. 최정환 기자는 중학생 때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다. 전쟁터를 누비고 부정을 고발하는 외국기자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당장 종군기자가 될 순 없지만 적어도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지역언론사에 지원했다.


역사 과목을 좋아했던 윤제덕 기자는 매일을 기록하는 기자에 매력을 느꼈다. 신다빈 기자는 국정농단 사태 당시 언론의 역할을 체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기자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월급 받으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으로 기자를 택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이서정 기자는 친구의 추천으로 언론고시반에 들어간 뒤 언시를 패스했다. 그전까지 종이신문 구독은 “당연히” 하지 않았고 TV 뉴스도 보지 않았다. 기사는 포털에서 보는 게 당연했다.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윤제덕 기자는 “대학에서 종이신문이나 TV로 뉴스를 보는 사람은 전혀 없다. 만약 있다면 다들 희귀하게 볼 정도”라고 했다.


기자가 되어 마주한 뉴스룸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밖에서 외면 받던 종이신문과 TV가 여기선 귀중한 대접을 받았다. 기사 한 꼭지가 보도되는 데도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윤제덕 기자는 “신문 기사 제목에 쉼표 하나, 글자 하나를 넣느냐 마느냐까지 신경 쓰는 모습이 신기했다”고 말했다.


이런 신기한 풍경에 의문도 들었다. 지면이나 TV, 온라인으로 나가는 기사는 똑같이 중요한데 왜 전자에 더 큰 신경을 쓰냐는 거다. 물론 한 번 인쇄되고 방송되면 수정이 어렵다는 건 안다. 하지만 사실상 디지털로만 뉴스를 접한 이들에겐 선배들의 인식과 방식이 와 닿지 않았다.

이서정 기자는 “지면에 들어가는 내용은 한정적이고 온라인에는 다 싣는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차피 같은 콘텐츠인데 둘을 구분해서 보는 게 이상하다”며 “지면 기사는 1·2차 데스킹을 거치지만 온라인 기사는 이렇게 쉽게 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도제식 훈련 비효율적… 교육 전담자 둬야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팬데믹 상황에서 입사한 이들을 두고 선배들은 ‘기자생활 편히 한다’고들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회식이나 취재원과의 술자리가 사라졌고 재택근무까지 하니 그렇다. 게다가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경찰서 숙식 교육’이 사라진 2018년 하반기부터 수습기자들은 정시에 출퇴근하며 일한다.


과거에 비해 근로여건은 나아졌다지만 이들이 느끼는 업무강도는 결코 약하지 않다. “52시간은 수습 때만 지켜졌다”(이서정)거나 “입사 전엔 수습하다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힘들게 합격해놓고 왜 그럴까’했는데 이젠 그 마음이 이해된다”(최정환) 등의 반응이다.


기자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훈련 방식엔 불만이 컸다. 회사 차원의 매뉴얼보단 도제식으로 이뤄지는 교육 과정에서 이들은 답답함을 토로했다. 처음부터 업무 과정을 설명하고 가르치면 될 텐데, 무조건 시켜보고 잘못하면 혼내는 걸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기자생활이 이렇게 맨땅에 헤딩하는 건 줄 몰랐어요. ‘발제’라는 개념조차 모르는데 아무도 안 알려주면서 무조건 하라는 거예요. 왜 꼭 혼나면서 배워야 하는지 이해가 안돼요. 발제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이고 어떤 형식을 갖춰야 하고 좋은 발제를 하려면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한 번이라도 제대로 알려주면 안 되나요? 물어보는 것조차 눈치 볼 수밖에 없는 분위기고요. 쓸 데 없는 데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지금 방식은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이에요.”(윤제덕)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훈련 방식이 궁색하다고 생각해요. 시스템 자체가 너무 낡았어요. 도제식에 주먹구구식이어서 동기여도 교육 격차가 생기거든요. 자기 일로 바쁜 선배들이 수습까지 떠맡다보니 급하게 성장시키는 방식으로 이런 문화가 자리 잡은 것 같아요. 기자의 노동환경 측면에서도 안 좋죠. 회사가 담당자를 따로 두고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게 맞다고 보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기자 한 명을 뺄 수 있겠어요. 현실적으론 어렵겠죠.”(신다빈)

언론환경 변했는데 언론사는 그대로… 고질적 문제 개선 필요

장기화하는 코로나19와 경찰·검찰의 피의사실공표죄 처벌 강화 기조는 취재환경을 바꿔놓았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었던 경찰서 1층엔 ID카드 소지자만 출입할 수 있는 게이트가 생겼다. 취재원을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아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 과거를 겪어본 적 없는 기자들은 선배들의 무용담으로만 ‘좋은 시절’을 간접 체험할 뿐이다. 환경이 변했는데도 윗선의 지시와 업무방식은 그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


최정환 기자는 “옛날엔 수사일지도 다 볼 수 있었다는 선배들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며 “지금은 경찰서를 열심히 돌아도 사담 나누는 정도이지 영양가 있는 얘긴 듣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서에 한 번이라도 더 가서 “뚫으라”는 지시에 “어렵다”고 답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최 기자의 마음엔 물음표가 생겼다. ‘꼭 경찰서에 가야만, 경찰을 만나야만 기사를 쓸 수 있을까.’ 하루하루 마감에 쫓기다보니, 고민은 무뎌져갔다.


“출입처를 챙겨야 하니까 정작 더 중요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덴 소홀해져요. 발제는 이렇게 했는데 막상 취재해보니 시간이 더 필요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지면에 잡히면 그대로 써내야 해요. 지면을 채워야 하니까요. 마감 압박 때문에 각색의 유혹을 느낀 적도 있어요.”(최정환)


수습 때부터 자율성보단 지시에 순응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결과를 만들어내길 바라는 문화는 기자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다. 최근 논란이 된 MBC 기자의 경찰 사칭 취재는 잘못된 문화가 만든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 한 언론사에선 거짓 보고를 일삼은 수습기자의 채용이 취소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신다빈 기자는 “안 되는 건데도 자꾸 하라고 몰아붙이니까 유혹에 빠지는 것 같다. 현장에서 보면 ‘저러다 사고 날 것 같은’ 상황도 있고 저 스스로 ‘이래도 되나’ 생각한 적도 있다”며 “회사에서 취재 과정이나 윤리문제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가이드라인 없이 기자 개인과 주기적으로 바뀌는 캡의 판단에만 맡기는 건 문제”라고 했다.


기자사회는 네 기자가 꺼낸 속마음을 모른 척해선 안 된다. 얼마 안가 자조적이고 무기력하게 변할, 결국 고개를 저으며 언론사를 떠날 이들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언론사는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 소름이 돋고 바이라인이 무겁게 느껴진다”는 윤제덕 기자가 환경 이슈를 깊게 파고들 수 있도록, 신다빈 기자가 “기사의 무서움을 느끼며 늘 고민”할 수 있도록, 최정환 기자가 “자신만의 관점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도록, 이서정 기자가 “우리사회의 불평등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할 책임이 있다. 기자의 개인기만으로, 스스로를 갈아 넣으며 버텨내야만 하는 시대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가 됐다.
 

김달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