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올림픽’, ‘세상에 없던 올림픽.’
국내 언론이 이번 도쿄올림픽을 두고 하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 7월19일 오후 1시40분, 도쿄 나리타공항에 도착하자 ‘세상에 없던’ 올림픽이라는 말이 제대로 실감났습니다. 입국 절차부터 매우 복잡했습니다. 서류 확인·코로나 검사·결과 대기·입국 수속 순으로 진행됐는데, 공항을 빠져나오기까지 4시간 가까이 소요됐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일본 정부와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대회 기간 내내 취재진에게 강력한 방역을 요구했습니다. 입국 날을 ‘0일’ 기준 삼아 14일까지는 숙소와 경기장 체류만 허용할 뿐이었습니다. 외출은 딱 15분만 허용하는데, 숙소 바로 인근의 편의점만 가야했습니다. 호텔 로비에는 조직위원회에서 파견한 감시 인력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엄포와 달리 감시원은 취재진 감시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각자 알아서 코로나19를 조심하며 취재해야 하는 상황. 그러다 보니 서로 안부를 물을 때 ‘오겡끼데스까(おげんきですか)’가 아니라 ‘코겡끼데스까(코로나+오겡끼데스까)’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재진의 우스갯소리도 나왔습니다.
코로나19는 취재 환경에도 큰 제약을 줬습니다. SBS와 KBS, MBC 등 지상파 3사는 올림픽 방송 중계권사로 이전 올림픽까지는 타 방송사보다 비교적 취재 접근성이 수월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없던’ 도쿄올림픽은 달랐습니다. 올림픽 방송을 총괄하는 OBS는 종목별 취재 신청을 하루 전 정오까지 받았고, 야구와 축구 등 인기 종목은 이틀 전까지 취재 신청 마감을 요구했습니다. 경기장별로 취재석, ENG 포지션, 믹스드존을 각각 신청한 뒤 승인이 떨어져야 취재가 가능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올림픽 취재 현장에서 다음 날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을 하고 취재 신청을 하는 건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일단 대회 초반 우리 선수가 출전하는 모든 경기에 취재 신청을 접수했습니다. 그러나 29개 종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경기가 진행되다 보니, 토너먼트에서 조기 탈락한 우리 선수들의 취재는 어려웠습니다.
취재 신청을 하고 가지 못해 이른바 ‘노쇼’가 발생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OBS는 ‘노쇼’를 이유로 한국 방송사에 페널티를 준다며 취재 신청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취재석, ENG 포지션, 믹스드존 전체가 거부되거나 일부만 승인 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일정을 거듭할수록 상위 토너먼트가 열리고, 메달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취재 신청을 거부당하자 취재진은 ‘멘붕’에 빠졌습니다.
이때부터 취재진의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됐습니다. 취재진은 현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BIO(broadcast information office)를 찾아 예약 내역을 확인하고 스티커를 AD 카드에 부착해야 합니다. 스티커 없이는 어느 곳도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BIO에는 OBS 매니저가 앉아 있었는데, 경기장에 방문할 때마다 상냥한 목소리로 안부를 물으며 현재 우리 선수와 방송사의 상황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맡은 야구와 배구, 탁구, 사격의 OBS 매니저는 취재진의 사정을 딱히 여겼는지, 현장에서 대부분 승인을 해줬습니다. 그럴 때마다 ‘땡큐’ ‘아리가또’ ‘고맙습니다’를 연발했습니다.
힘든 취재 환경이지만, 우리 선수들의 활약을 볼 때마다 피로는 눈 녹듯 녹았습니다. 짧게는 1~2년 길게는 10년 넘게 곁에서 지켜본 선수들이 ‘세계 최고의 무대’ 올림픽에서 멋진 활약을 펼치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여기에 ‘체조 여왕’ 시몬 바일스의 마지막 무대, ‘58세 탁구 고수’ 니 시아리안의 도전 정신, KBO리그를 대표해 야구 심판으로 나선 강광회 심판원의 ‘엄격한 K-존’ 취재는 올림픽만의 색다른 묘미를 선사했습니다. 8월8일 폐회식과 함께 성화의 불이 꺼지면서 걱정했던 코로나19 감염 없이 그렇게 ‘세상에 없던’ 올림픽은 막을 내렸습니다.
다음 하계 올림픽은 2024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립니다. 호텔 앞에서 커피를 마시다 옆에 앉은 프랑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이번 대회에 대한 소회와 다음 파리올림픽에 대한 기대를 물었는데, 저와 생각이 똑같았습니다.
‘세상에 없던 올림픽’이 다시는 없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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