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미뤄진 2020 도쿄올림픽 출장 여정은 대부분의 파견 기자들이 출발 전부터 진이 쭉 빠진 상태였다. 스포츠 기자로서의 경력은 일천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인 재작년까지의 국제대회 출장들과 비교하면 이번 대회는 준비 단계부터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취재 신청을 위해 대다수 회사가 2019년 하반기에 파견 기자들을 확정했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일단 도쿄올림픽 출장을 갈 수 있을지 없을지부터 불투명해 지면서다.
개막이 다가올수록 “올림픽 하긴 하는 거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감했다. 무관중 개막이 결국 현실로 다가오면서 걱정은 더 커지는 출장이었다. 무더위도 코로나19 확진자 수도 서울보다 감내하기 힘든 여건인 데다, 무엇보다 일본 정부와 조직위의 아리송한 방역 지침에 취재진들이 일찌감치 지쳐갔다. 올림픽을 1년 더 준비하면서 행여나 취소될까 전전긍긍했던 선수들 속은 오죽 타 들어갔을까 싶다.
취재진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한창일 때 1차 접종을 했고, 이때부터 현장취재 계획을 접는 매체도 생겼다. 조직위는 개막 세 달 전쯤 미디어 전용 숙소를 지정, ‘버블 방역’을 통보해 기존 숙소 예약들을 취소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백신 접종을 완료했더라도 일본 입국 후 지정 숙소에서 4박5일의 격리를 포함한 14박15일의 이동 제한이 진행됐다. 7월19일 일본에 도착한 본보 취재진의 경우 개막일인 7월23일에야 격리가 풀렸고, 8월3일에야 이동 제한이 풀렸다. 도쿄도내 확진자가 1일 최대 5000명을 넘긴 날도 있었던 만큼, 누군가가 감시는 안 해도 지키라는 건 웬만큼 다 지켰다.
이동 제한 기간 동안은 메인프레스센터(MPC) 근처의 ‘터미널’을 꼭 거쳐 숙소와 경기장을 다녀야 했고, 그게 어려울 땐 한 사람당 14장씩 제공된 1만엔(약 10만원)짜리 택시 바우처를 활용해 택시로만 이동해야 한다. 국내 취재진들은 껍데기뿐인 방역 대책을 실감하며 기막혀 하기도 했다. 격리 기간에도 편의점 등 외부 출입이 1회 15분씩 무제한으로 가능했고, 이동 동선 통제도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이동 제한 기간 동안 사용하라고 지정해 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버튼을 누르면, 반대편에 있는 일반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호텔 직원이 타도 된다고 해서 그냥 탔다.
격리 매뉴얼엔 편의점만 다녀오라고 했는데 호텔에서 취재진 출입을 관리하는 고령의 스태프가 “호텔 건너편에 맥도날드가 있다”고 추천해준다거나, 택시는 반드시 예약해서 타라고 했는데 비예약 택시가 “바우처 OK”라며 호텔 앞에서 반기곤 했다. 하루 한 차례씩 코로나19 검사를 위한 타액을 제출해야 하는데 격리 기간엔 낼 곳이 불분명해 취재진들이 조직위 쪽에 “왜 타액 샘플을 회수해가지 않느냐”고 전화하는 상황들도 벌어졌다. 조직위는 각 언론사별 ‘코로나19 담당자’ 격인 CLO(Covid19 Liason Officer)를 지정해두도록 했는데, 이 업무가 만만찮다. 조직위에서 따로 급여를 줘야 한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각국 취재진이 붐빈 MPC, 그리고 MPC행 버스에선 다른 나라 취재진들의 수다가 끊이질 않는다. 백신을 맞았고, 방역수칙을 잘 지키더라도 ‘운 나쁘면’ 코로나19에 걸리는 환경이란 표현이 무리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14박15일간의 외식 금지가 힘들었다. ‘식도락 천국’이라는 일본에서 도시락 지옥을 경험했다. 아니다, 편의점 도시락이 그나마 다양하고 괜찮았기에 ‘도시락 천국’쯤으로 기억해 두겠다. 뒤늦게 손을 댄 음식 배달 앱 ‘우버 이츠’와 해외 취재진으로부터 ‘고무 고기’라는 평가를 받았던 MPC 내 음식점들을 찾는 게 그나마 소소한 재미였다.
어느 때보다 특수한 취재 환경이었던 터라 고생스러웠던 건 사실이지만, 한국의 젊은 세대 선수들이 만든 ‘새로운 올림픽’을 기록할 수 있어 기뻤다. ‘원팀’을 일궈 여자 배구 4강을 이끈 김연경의 아름다운 퇴장, 금메달을 놓치고도 상대 선수를 치켜세우며 승복의 가치를 일깨운 태권도 이다빈과 유도 조구함의 품격, 메달을 못 따도 충분히 감격을 느낄 수 있단 걸 보여준 수영 황선우와 높이뛰기 우상혁의 활약, 그리고 논란 속에서도 3관왕을 완성한 안산과 동료들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우렁찬 “파이팅”을 선사한 김제덕까지. 현장을 누빈 모든 날 모든 순간을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일본의 허술한 방역 대책을 겪어보며 개최 강행이 큰 도박이었단 점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어쨌든 끝을 보게 돼 참 다행이란 생각이다. 이번 대회에서 도드라진 우리 선수들의 도전과 승복, 동료애, 그리고 올림픽 무대에서의 양성평등 움직임 등 건강한 변화를 확인하며 의미를 찾았다. 하루빨리 코로나19 확산이 억제돼 3년 뒤 파리올림픽에 나서는 선수들이 관중들의 환호를 받고, 다른 나라 선수들과 소통하는 ‘지구촌 축제’를 제대로 즐길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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