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줘도 안 맞는' 미국인들의 백신 기피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100달러 현금 보상, 무료 식사, 백신 접종장소까지 교통편 제공, 복권….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맞는 사람들에게 미국 각 지역에서 제공하는 인센티브들이다. 코로나 백신이 차고 넘쳐 이젠 동네 수퍼마켓에서 파는 감기약 만큼이나 구하기 쉬워졌지만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백신 접종을 기피함에 따른 조치들이다. 백신을 맞고 싶어도 예약을 못해 장시간 대기해야 하는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풍경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하면서 백신 접종률을 높여 미국을 단시간 내에 코로나 이전으로 돌려놓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독립기념일(7월4일)까지 성인의 70%가 1회 이상 백신을 맞아 집단면역이 형성되면 이번 독립기념일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초반 몇 달간은 안정적인 백신 수급과 접종률 급증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계획이 실현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졌다. 백신 접종률이 늘면서 필자의 학교를 포함, 대부분의 학교들이 가을학기부터는 대면수업을 시작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하지만 접종률이 점차 주춤하면서 독립기념일을 한 달 넘긴 지난 6일에야 성인의 70.6%가 한 번 이상 백신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인구로 보면 1회 이상 백신을 맞은 사람은 58%, 접종을 완료한 경우는 50%다.


한국을 비롯, 백신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결코 낮은 접종률은 아니다. 하지만 집단면역을 기대할 수 있는 백신 접종률(전체인구의 70% 이상이 접종 완료)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게다가 델타변이로 인한 신규감염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백신의 효과에 대한 정부와 전문가들의 끊임없는 설득에도 접종률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의 근심이 깊어지는 이유다.


마음만 먹으면 백신을 맞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각종 혜택과 편의 제공에도 전체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백신을 맞지 않는 상황이 한국인의 눈에는 선뜻 이해가 안되는 게 사실이다. 필수 예방접종을 당연시하며 성장한 필자에게 백신은 의무적으로 따라야할 공중보건에 관한 문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 백신 기피는 정치·사회·종교적 이슈가 한데 얽힌 상당히 오래되고 복잡한 문제다.


그 기원은 17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드워드 제너의 천연두 백신은 ‘신이 내린 벌인 천연두를 백신으로 막는 것은 신에 대한 도전’이라며 종교인들의 반발을 샀다.


1800년대 미국의 각 주가 취학아동에 대한 예방접종을 의무화하자 종교인들은 개인의 결정권 침해라며 또 한번 반발했다. 현재는 모든 주에서 예방접종을 의무화했지만 일부 주에서는 여전히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면제해주기도 한다.


앤드루 웨이크필드의 논문 조작은 백신거부 대중화의 ‘일등공신’이다. 그가 1998년 의학저널 랜싯(Lancet)에 홍역·볼거리·풍진 전염병(MMR)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허위 논문을 발표하면서 많은 이들이 백신을 본격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했다. 2010년 논문이 허위임이 드러나 게재가 전면취소됐지만 백신의 위험성은 12년간 퍼질대로 퍼진 뒤였다. 더 큰 문제는 열렬히 백신을 거부하는 이들(anti-vaxxer)은 지금도 이를 인용해 각종 허위정보와 음모론을 재생산,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백신 거부가 주로 정치적 보수층에게 반향을 일으키면서 미국에서 백신은 이념의 문제로까지 자리잡았다. 지역주민의 상당수가 공화당원인 지역에서는 주변사람들의 비난을 피해 코로나 백신을 맞기 위해 변장까지 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백신거부 정서가 이처럼 깊이 자리잡은 만큼 남은 40%를 설득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백신 미접종자들이 모두 확고한 백신거부자는 아니다. 일부는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주저하는 부류로,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그리고 이들에게 필요한 건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확신이다. 인센티브보다는 허위정보를 막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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