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캠퍼스(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인근에는 구글을 오가는 통근 버스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구글 사옥 출입구 곳곳에는 ‘당신이 여기에 있어서 정말 기쁘다’는 문구도 눈에 띈다. 현재 구글은 오는 9월 재택근무 종료를 앞두고 준비 기간을 주고 있다. 원칙은 재택근무지만, 출근을 해도 막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오랜만에 사무실 복귀를 해야하기 때문에 익숙치 않을 직원들을 위해 배려 기간을 주고 있는 것이다.
혁신의 산실 실리콘밸리는 코로나19 여파로 1년 이상이 온라인 세상이었다. 프리몬트에 공장을 보유한 테슬라를 제외하고는 상당수 빅테크 기업들이 출근을 금지하고,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하지만 그 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구글은 9월, 애플은 10월부터 재택근무 원칙을 끝낼 예정이다. 빅테크 기업들의 출근 소식은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들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또 뉴욕 월가에 있는 금융사들은 더 엄격하다. 제임스 고만 모건스탠리 CEO는 앞서 “9월 초까지 사람들이 사무실에 출근하지 못한다면 매우 실망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택근무에 익숙해진 직장인들은 전면 출근이 어색하다고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아직 매일 출근하라는 요청은 없지만, 재택근무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제는 출퇴근을 하면서 버리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이 곳 근로자들 다수의 생각이기도 하다. 미국 여론 조사 업체 모닝컨설트가 올해 5월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39%의 근로자들이 회사가 원격 근무에 유연하지 않을 경우 퇴사나 이직을 고려할 것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이 곳 고용 시장은 근로자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실리콘밸리 곳곳에는 ‘현재 채용중(Now Hiring)’이라는 플래카드들이 내걸려 있다. 미국 노동부가 밝힌 5월 채용공고는 920만9000건으로 2000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 수준이다. 반면 전체 퇴직은 531만8000건으로 이 가운데 67%인 360만4000건이 자발적 퇴직이었다. 외신들이 대량 퇴직(Great Resignation)이라고 정의를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1년 이상의 재택근무 시간은 많은 것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출근을 통해 동료들끼리 소통을 해야지만 기업 문화가 제대로 전파되고 이를 통해 기업이 성장한다는 공식이 깨져버렸다. 올해 1분기 매출만 놓고 보면 아마존은 전년 동기보다 44%, 구글은 34%, 페이스북은 48%, 애플은 54%씩 성장 신화를 써내려갔다. “저런 일을 집에서 혼자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업무마저도 코로나라는 특수한 환경이 실험실을 제공해주는 계기였다고 한다.
상당수 빅테크 기업들이 출근을 선언했지만 하이브리드 근무라는 새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이유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근무 형태를 6단계로 구분해 탄력 운영하기로 했고 애플, 아마존, 구글은 주중 며칠은 재택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로 했다. 변화는 빅테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100년 역사를 지닌 미국 첫 타블로이드지 뉴욕데일리뉴스는 편집국 사무실을 영구 폐쇄했고 영국 일간지 미러, 익스프레스 등도 물리적인 뉴스룸을 줄이고 기자들을 영구 재택근무로 돌렸다.
근무 시스템 변화는 뉴스룸에 큰 충격파를 줄 수밖에 없다. 취재원을 만나는 방식이나 특종을 하는 방식, 그리고 기획 취재를 하는 방식이 사람을 만나 모든 것을 이루던 옛 방식과는 크게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행사 취재나 보도자료도 여전히 주요한 출처겠지만, 미디어간 차별화된 콘텐츠 제작은 앞으로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유명 인사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요 발표를 시작한 것도 벌써 오래전 일이다. MIT미디어랩 설립자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1995년에 아날로그인 아톰(atom)의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digital)의 시대가 왔다고 했지만, 미디어들은 하이브리드 근무 시대의 생존이라는 또 다른 숙제를 떠안게 됐다.
이상덕 매일경제신문 실리콘밸리특파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