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정부광고 제도를 개편해 핵심지표와 참고지표를 토대로 인쇄매체 정부광고를 집행해나갈 계획입니다.” 사실상 한국ABC협회와 부수공사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는 선언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8일 ABC협회의 부수공사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며 내년부터 정책적 활용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간 지속적으로 부수 조작 의혹이 제기되고 올해 초 사무검사까지 벌여 다수의 문제점을 발견, 제도개선까지 권고했지만 ABC협회가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문체부는 법을 개정해 오는 10월 이전까지 언론보조금 지원 기준에서 부수 기준을 제외하고, ABC협회에 지원했던 공적자금도 환수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이번 발표에서 부수공사 대신 연내 ‘구독자 조사’를 추진해 핵심지표로 활용한다는 방침도 설명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위탁해 전국 16개 지자체 5만명을 대상으로 지난 한 주간 열람한 신문이 무엇인지(열독률), 정기 구독한 신문은 무엇인지(구독률)를 대면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언론중재위원회 직권조정 건수, 신문윤리위원회 심의 결과 등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자료도 핵심지표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참고지표로는 포털 제휴나 인력 현황, 법령 준수 여부 등을 살펴보겠다고 했다.
문체부, 연내 ‘구독자 조사’ 추진... 정부광고 집행 등에 핵심 지표로
다만 새롭게 발표한 정부광고 집행 기준을 두고 일각에선 ‘언론 길들이기’ ‘줄 세우기’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구독자 조사의 경우 문체부가 밝힌 방식으론 열독률과 구독률을 명확하게 조사하기가 쉽지 않고, 오히려 기존의 질서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게 대표적인 지적이다. 언론재단에서 매년 5000명을 대상으로 수용자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표본을 단순히 10배로 늘린다고 신문별로 정확한 서열과 기준을 나눌 수 있냐는 것이다.
조성겸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열독이라 함은 말 그대로 신문을 얼마나 열심히 봤냐는 것인데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를 것”이라며 “사람들이 어떤 신문을 어떻게 보았는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자칫 이미지 조사가 되기 쉽다. 유료부수의 경우 돈을 주고 구독한 부수라는 것으로 의미가 명확했지만, 열독률은 그 수치가 뜻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기에 기억에 의존하는 데이터 보다는 행동을 기록한 자료의 신뢰도가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구독률에 대해서도 “구독은 통상 가구단위로 이루어지는데 개인조사로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구독자 조사를 언론재단에 맡기는 것을 두고도 독립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ABC협회와 같은 민간 영역이 아니라 문체부 산하 언론재단이 조사를 수행하게 되면 정부 입김이 세질 수 있다는 우려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다만 “언론재단도 조사 회사에 맡길 수밖에 없고, 적은 비용의 조사도 아니기 때문에 공개 입찰을 통해 조사 회사를 선정할 것”이라며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은 투명하고 공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구독·열독률 집계는 언론재단 위탁... 학계 “자칫 이미지 조사 될 우려”
일각에선 핵심지표로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높은 지표를 받기 위해 언론중재위에서 조정을 받기보다 소송을 택할 가능성이 있고, 사전에 아이템을 검열하는 등 위축효과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언론노조는 지난 12일 발표한 성명에서 “정정보도의 경우 언론사가 오히려 언론중재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면 지표 점수는 하락할 수 있다는 역설은 재고되어야 한다”며 “만약 언론중재나 자율심의에 대상이 되는 보도가 권력·자본 감시·비판 성격이라면, 언론사 내부에서 이런 보도를 사전에 검열할 계기를 준다는 점에서 보도 위축효과도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허찬행 청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다만 “개별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선 기존에도 부수공사 외에 ‘왜곡 또는 허위·과장보도로 언론중재위서 정정보도를 한 언론사는 제외’하는 등의 규정을 두고 광고를 집행하고 있었다”며 “그걸 표준화하는 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정부도 광고주 입장에서 좀 더 효율적인 광고 집행을 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현 문체부 미디어정책국장도 브리핑에서 “사회적 책임을 지표로 도입한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정부광고를 지원하기 때문”이라며 “점수화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여러 논란에도 지난 11년간 정부광고 집행 기준이 돼왔던 ABC협회의 부수공사는 이제 큰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됐다. 개편안의 적절성을 따지는 목소리와 함께 부수공사를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 이유다. 언론노조는 문체부,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언론사 경영진 단체, 언론시민단체, 언론 유관 학회 및 언론노조가 공론장을 만들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부수공사를 대체할 지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각 신문사들이 자사이기주의를 버리고 보편적으로 적용할만한 평가기준을 자체적으로 내놓는 것도 좋다고 본다”며 “곪은 게 터진 지금은 언론사들이 스스로 개선책을 내놓기에 참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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